트럼프 "AI에 718조 투자"…미∙중 패권 3차대전, 韓엔 호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AI 인프라에 최소 5000억 달러(약 71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워싱턴DC 백악관 내 루스벨트룸에서 열린 회견에는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AI 인프라에 최소 5000억 달러(약 71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워싱턴DC 백악관 내 루스벨트룸에서 열린 회견에는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3막이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미국 내 인공지능(AI) 인프라 건설에 5000억 달러(약 71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 화웨이 제재로 시작한 1막,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수출 통제로 이어간 2막에 이어 이번에는 경제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른 AI 기술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세대 AI를 구동하기 위한 물리적·가상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등 3개 회사가 ‘스타게이트(Stargate)’란 합작사를 설립해 미국 각지에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회견장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배석했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면 3사가 스타게이트를 설립하고 초기 자금으로 즉시 1000억 달러(약 144조원)를 투입한다. 미국 남부 텍사스를 시작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4년 동안 AI 인프라 투자에 5000억 달러까지 투자할 방침이다. AI 모델을 훈련·구동시키려면 대규모 데이터를 연산하고 추론할 수 있는 AI 가속기가 필요한데, 이런 첨단 반도체를 보유한 데이터센터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은 필수 인프라다.

오픈AI에 따르면 스타게이트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재정적 책임과 더불어 회장직을 맡고, 오픈AI는 운영 책임을 맡는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 AI 펀드인 MGX와 오라클도 자금을 대고,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MS, 엔비디아는 기술 파트너로 참여한다. 미국의 기술, 일본·중동의 자본이 결합해 AI 산업의 핵심 기반 시설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것(AI 기술과 인프라)을 미국에 두고 싶다”며 “여느 때 같았으면 중국이나 다른 나라로, 특히 중국으로 갔을 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트럼프 당선인 신분 때 미국에 10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밝힌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이날도 회견장에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등장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손정의는 트럼프의 ‘절대반지’에 키스를 하러 온 일본의 기술 거물(tech titan)”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 직후 대규모 투자 카드를 공개한 건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AI 기술 굴기를 미국이 꺾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근 중국은 미국의 한층 강화된 견제에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AI 패권전쟁, 한국 반도체엔 호재…기술경쟁력 확보는 과제

이참에 AI 모델, 첨단 반도체, 반도체 제조장비 등을 국산화해 미국의 기술 통제에서 아예 벗어나겠단 전략이다. 또 미국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지만, 중국은 정부가 주도해 AI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이후 지난해까지 정부 투자 435억 위안(약 8조2000억원)을 포함해 총 2000억 위안(37조7000억원)을 투입해 전국 8곳에 국가컴퓨팅허브를 구축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직전인 지난 17일 600억 위안(약 11조8300억원) 규모의 AI 투자 기금을 출범했다. SCMP는 “해당 기금은 미국이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더 많은 중국 기업을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린 지 며칠 만에 조성됐다”며 “중국의 AI 역량을 향상하려는 베이징의 결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력도 상당히 올라왔다. 지난해 8월 미국 경제·혁신 정책 싱크탱크인 정보혁신재단(ITIF)은 “중국의 AI에 대한 추진력과 전략적 투자를 보면 미국을 따라잡거나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AI 기술을 두고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는 국내 유관 산업에 기회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AI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는 큰 장이 선 것이라 호재”라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용 대규모 전력망과 배선 기술 기업 등에도 수요 확대가 기대된다.

다만 AI 인프라 수준은 열악하다. 정부가 올해부터 민관 합작투자로 2조원을 투자해 2027년까지 ‘국가인공지능(AI)컴퓨팅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정도다. 글로벌 AI 경쟁에서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스타게이트의 재정·기술 파트너 목록에 한국 기업은 없다”며 “미국은 기술, 일본은 자금으로 밀고 나가는데 한국은 어디에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일부터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유럽에도 관세를 부과할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는 특히 “중국은 (미국을) 악용하는 국가(abuser)이지만, 유럽은 우리에게 매우 나쁘다(very very bad)”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미국의 자동차와 농산물을 전혀 가져가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유럽연합(EU)에 350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며 “공정성을 되찾기 위해선 관세 부과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예고했던 보편관세에 대해선 4월 1일까지 미국의 무역 적자 상황과 환율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은 2023년 기준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으로 칭하며 바이든 정부와 맺은 방위비를 9배로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이어 유럽에도 관세 압박을 시작하면서 ‘약점’을 가진 한국에도 시한폭탄이 켜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