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7시 42분 경기도의 한 산악 지대 해발 500여m. 위치한 공군 미사일방어부대 8630부대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됐고, 머지않아 서울이 폭격 당할 수 있다는 의미.
비상대기조 3명이 비상대기실의 문을 박차고 나와 100여m 떨어진 패트리엇 발사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경고! 고각상승, 경고! 발사대 회전.” 손한수(31) 중사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은 익숙한 듯 요격 미사일 PAC-2·PAC-3가 탑재된 발사대 버튼을 순식간에 조작했다. 육중한 패트리엇의 8개 발사관이 ‘웅’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하늘을 향해 기립했다. 패트리엇 미사일들이 불을 뿜으며 날아갈 태세를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분 남짓이었다.
이후 작전통제권은 부대 내 이동식 트럭에 꾸려진 1평(3.3㎡) 남짓 교전 통제소(ECS)로 넘어갔다. 거의 동시에 멀리서 패트리엇의 ‘눈’인 위상배열추적레이더가 가동에 들어갔다. 빠르게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 및 최적의 요격 거리에 대한 자동 계산을 한다는 뜻이다.
곧 ECS 콘솔 화면엔 여러 발의 미사일이 떨어지고, 네 대의 무인기가 침투하는 가상의 상황이 펼쳐졌다. “적 탄도탄 탐지! 항공기 탐지!” “최종 식별 확인, 즉시 교전!” 등 급박한 구호들이 바삐 오가고, 어느 순간 콘솔 화면 위 빨간색으로 표시된 적 미사일과 무인기가 사라졌다. 성공적으로 요격했다는 의미였다.
‘수도권 영공 방어의 최초 결전 부대, 공군의 최전방.’ 산속 깊이 위치한 공군 8630부대를 수식하는 말이다. PAC2·PAC3 요격 미사일과 신궁·발칸 등 단거리 대공 무기를 운용하며 유사시 서울의 주요 시설과 인구밀집지역을 보호하는 게 주된 임무다.
정확한 부대명이나 위치조차 그 자체로 기밀인 8630부대가 언론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중앙일보는 공군의 협조로 8630부대를 20일 오후부터 21일 새벽까지 무박 동행 취재했다. 북한의 기습적인 탄도미사일 도발이 이뤄지는 건 주로 새벽 시간. 말 그대로 잠들 수 없는 공군 미사일 방어 부대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北미사일 쏘는 날이 실전” 공군의 최전방 부대
8630부대는 불시 훈련이 필요 없을 만큼 실전이 잦은 곳이다.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극초음속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쏜 이달 6일과 자강도 강계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수 발을 쏜 14일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시험 발사'라 주장하지만 언제든 방향을 틀어 남으로 쏘면 그게 곧 실전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오물풍선 부양 때도 감시·추적 대응을 하고 있다.
한·미 연합 정보 자산 등에 따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는 길게는 며칠, 촉박하게는 수 분 전에도 사전 탐지가 가능하다. 이 때부터 미사일방어부대들은 전투 대기 상태에 돌입하는데, 발사반이 패트리엇을 즉시 쏠 수 있는 상태로 전개하는 게 첫 단계다. 이호정(상사·43) 발사반장은 “징후가 포착된 후엔 언제든 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발사 준비를 1초라도 단축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걸리면 24시간 동안 3시간 교대로 한 명씩 비좁은 ECS에서 비상 근무를 하는 식으로 ‘무한 대기’에 돌입한다. 부대원들이 탄도미사일 작전을 "공백 없는 24시간 작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21일 오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ECS 근무를 마치고 나온 임동건(23) 상사는 “ECS 안에서 헤드셋을 낀 채 상급부대 지시를 기다리는 건 마치 수화기를 2~3시간 들고 있는 것과 같다”며 “새벽 시간에는 졸음을 참으려 믹스 커피를 8개 정도 마신다”고 했다.
서 포대장은 “이곳은 전·평시 구분이 무의미하다”며 “퇴근 직후 상황이 걸려 관사에서 아이를 안고 뛰어온 간부도 있었다”고 말했다. “양치 중 치약을 머금고 뛰어왔다”, “샴푸도 못 헹구고 왔다” 등 부대원들은 각자의 무용담이 있었다.
“극초음속 미사일 위협 과장할 필요 없어”
패트리엇은 탄도미사일의 종말단계 하층부, 대기권 40km 아래의 요격 체계다. 탄도탄을 직접 맞추는 방식(hit-to-kill)으로 96% 요격률을 자랑한다. 우크라이나가 지속적으로 패트리엇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다.
군은 미국산 패트리엇과 한국의 천궁(M-SAM)-Ⅱ 외에도 '한국형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거리지대공미사일(L-SAM), 장사정포요격체계 도입 등으로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촘촘하게 짠다는 구상이다.
서 포대장은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 방어에 대한 우려들이 나오지만, 현장 지휘관으로서 보기엔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선 극초음속이라도 종말단계에선 패트리엇 레이더에 걸릴 수 밖에 없다”며 “새로운 위협에 대비하되 너무 과장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담담히 말했다.
실전에서 방공 부대는 적의 주요 타깃이다. 8630부대도 레이더·발사대·ECS·발전기 등을 모두 트럭에 탑재하고 있다. 기동 방어 훈련도 수시로 한다. 8630부대의 최근 현안은 북한의 자폭형 무인기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 야경 보며 고립감 달래
이 곳에서 단거리 대공 무기 체계 신궁을 맡고 있는 안도현(22) 병장은 “평소엔 야경을 보며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오물풍선 같은 상황이 걸리면 계속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눈에 잘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8630부대는 총원 가운데 병사가 65%, 나머지는 장교·부사관이다. 매일 오후 10시에 이뤄지는 생활관 점호에서 당직사관의 유일한 질문은 하나. “아픈 친구 있습니까”이다. “모두 부모님들께 무사히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강모철(상사·43) 주임원사의 설명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