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보도 유세도 없는 벨라루스 대선…"어차피 대통령은 루카셴코"

26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선 그 흔한 후보들의 선거 벽보도 보기 어렵다고 한다. BBC는 "선거 캠페인도 없고, 유권자들은 선거에 무관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70) 벨라루스 대통령의 7연임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루카셴코도 압도적인 승리를 자신하며 선거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루카셴코 말고도 4명의 대선 후보가 더 있지만,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이들 대부분 친정부 성향으로 후보 자신이 아닌 루카셴코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7연임이 확실시되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7연임이 확실시되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루카셴코는 옛 소련으로부터 벨라루스가 독립한 지 약 2년 반 만인 1994년 7월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31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절친'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인 25년보다 오래된 것이다. 루카셴코는 대통령직을 두 차례 넘게 수행할 수 없도록 한 벨라루스의 헌법 조항을 2004년 국민투표로 폐지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서 루카셴코는 득표율 80%로 6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불법·편법 선거 논란이 불거져 벨라루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야권 시위와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루카셴코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에 참여한 수만 명이 구금되고, 독립 언론과 단체 수백 곳이 폐쇄됐다고 NYT는 전했다.  

당시 대선에서 야권 후보로 출마해 시위를 이끌었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리투아니아로 망명했다. 현재까지도 루카셴코의 정적과 야권 인사들은 대거 투옥되거나 해외에 있는 상태다. 때문에 NYT는 "이번 선거가 루카셴코의 승리로 끝나도 당시와 같은 저항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난해 12월 벨라루스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루카셴코.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벨라루스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루카셴코.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최대 우방국인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더욱 밀착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진입로를 제공했으며, 이후 러시아군과 연합 군사훈련을 벌였다. 러시아는 벨라루스 영토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는 등 벨라루스 안전 보장을 강화했다. 

러시아를 지원하는 벨라루스는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다. 최근 유럽의회는 EU(유럽연합)에 "이번 벨라루스의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루카셴코가 연임에 성공한 후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과 협상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루카셴코도 우크라이나전 종전 가능성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루카셴코는 지난해 7월부터 극단주의 활동 혐의로 복역하던 250명을 인도주의적 사면으로 잇따라 풀어줬다"며 "이는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