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아니스트들의 뿌리였던 정진우 교수 별세

한국 피아노계의 거목인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별세했다. 중앙포토

한국 피아노계의 거목인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별세했다. 중앙포토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뿌리,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가 26일 별세했다. 97세.

 
고인의 제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인보다 7살 아래의 김석 경희대 명예교수에서 시작해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배 추계예대 명예교수, 백혜선ㆍ강충모 등 한국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피아니스트들이 그에게 배웠다. ‘정진우 사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2018년 90세 기념 공연에는 90명의 제자가 무대에 섰다.

 
그는 의사 출신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다. 1945년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월남했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이후 군의관으로 자원 입대해 6ㆍ25 전쟁에 참전했다. 한겨울 중공군이 남하하는 중에 전투화가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가 발에 동상이 걸려 양쪽 발가락을 모두 절단한 뒤 명예 제대했을 때가 1951년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피아노를 늘 가까이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의학을 선택했던 삶이었다. 의과대학을 다니면서도 교회, 피아노 상점에 가서 연습을 하고, 합창단의 반주자로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후에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1952년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첫 독주회를 한 그는 서울대·이화여대·서울예고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5년 후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1959년부터 1993년 정년퇴임 할 때까지 서울대 음대의 교수로 재직했다.

고(故) 정진우 피아니스트. 중앙포토

고(故) 정진우 피아니스트. 중앙포토

교육자로서 고인은 레슨실에서 노래하는 스승이었다. 2018년 서울대 총동창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경계하고, 늘 노래를 먼저 들려줬다. 음악을 느끼고 연주하라고 했다”고 했다. 또 “음악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늘 휴머니즘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고인에게 배웠던 신수정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음악성이 뛰어난 분이셨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많은 피아니스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자들 모임인 ‘정진우 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배 명예교수는 “한 마디로 거인이셨다. 동문회 회원을 숫자로 추산해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1000명 이상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음악의 한 페이지만 보고 있던 때에 선생님이 옆에서 노래해주면 곡 전체가 갑자기 보이는 마법을 체험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한국쇼팽협회, 한국베토벤협회를 창립했으며 1990년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한국쇼팽협회를 국제연맹에 가입시켰다. 1982년부터 2019년까지는 월간 ‘피아노 음악’의 발행인을 지냈다.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성정예술인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유족으로는 아들 세민(대승 대표이사), 딸 소희(음연 대표)ㆍ소정 씨, 사위 하헌구(뉴연세의원 원장)이 있다. 발인은 28일.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