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이 실시돼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각각 국민의힘 후보로 나설 경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설날을 맞아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3~24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3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한 결과다.
이재명 대표와 범여권 정치인 7명이 가상으로 맞붙은 양자 대결에서 이 대표는 모든 후보에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누가 여권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상대적 경쟁력은 차이가 컸다. 이 대표와 오세훈 시장이 맞붙으면 46%와 43%, 이 대표와 홍준표 시장이 대결하면 45%와 42%로 오차범위(±3.1%포인트) 내 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도 서울과 강원, 대전·세종·충청,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에선 오·홍 시장이 앞선 반면 인천·경기, 광주·전라, 제주에선 이 대표가 우세해 혼전을 보였다. 연령별로는 40대와 50대는 이 대표가, 60대와 70대 이상은 오·홍 시장이 각각 이기는 거로 나왔다. 보수와 진보의 전통적 지지층이 각자 진영의 후보를 선호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층 성향이 강한 18~29세와 30대는 결과가 엇갈렸다. 30대는 오·홍 시장이 모두 앞섰다. 그러나 18~29세에서 이 대표(43%)와 오 시장(38%)은 박빙이었고, 홍 시장(47%)은 이 대표(35%)보다 우위였다.
이같은 박빙 승부는 ‘정권 유지’(42%)보다 ‘정권 교체’(51%) 여론이 더 강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줄곧 부정적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은 찬성(60%)이 반대(35%)를 크게 앞질렀다. 윤 대통령 탄핵을 원하고, 현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민심이 저변에 깔린 상황에서도 이 대표가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탄핵 여론이 정권 심판 여론으로 바로 연결이 안 되고 있는 데다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있는 것도 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자 대결에서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이유는 각 진영이 이미 총 결집한 영향도 큰 것으로 풀이된다. 정당 지지를 물었을 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41%와 40%로 엇비슷했다. 지지 정당이 ‘없다’(11%)라거나 ‘모름·무응답’(1%) 등 부동층은 12%에 그쳤다. 결집 양상은 양자 대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층은 이 대표와 오 시장 대결 때 12%, 이 대표와 홍 시장 대결 때 13%로 정당 지지도 부동층과 거의 같았다. 윤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이미 상당수 유권자는 현 상황을 대선 국면으로 인식하고 각자 진영으로 흡수되고 있는 셈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여론수석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이례적으로 높다”며 “보통 무당층이 25% 정도 나오는데, 이번에 무당층이 10%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건 양 세력이 서둘러 결집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2년 3·9 대선을 한 달여 앞뒀을 때의 정당 지지율이 30%대였던 만큼 지금이 더 뭉친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해 보수 진영의 유력 주자로 떠오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본선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거로 나왔다. 이 대표와 김 장관의 가상 양자 대결에선 이 대표 47%, 김 장관 38%로 오차범위 밖인 9%포인트 차였다. 반면에 이 대표(44%)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37%), 이 대표(42%)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35%)의 차이는 각각 7%포인트였다.
이 대표(46%)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34%)의 가상 대결에선 12%포인트 차이가 났고, 이 대표(47%)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26%)은 2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뒤 여권에 계속해 각을 세워온 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양자 대결 때 국민의힘 지지층은 46%만 이 의원을 택했고, 47%는 ‘없다’고 답했다.
양자 대결이 아닌 전체 대선 후보를 놓고 물었을 때는 이재명 대표(36%), 김문수 장관(16%), 홍준표 시장(10%), 한동훈 전 대표(8%), 오세훈 시장(7%), 김동연 경기지사(4%), 우원식 국회의장(2%), 이준석 의원(1%)의 순서였다.
전문가들은 현재 판세가 얼마든지 요동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성진 이화여대(정치학) 교수는 “아직 대선 국면을 명확히 분석하긴 이르다”며 “탄핵 결과 이후 대선 국면이 본격화돼야 유권자들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재 수석은 “민주당에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반면 범여권에선 이준석 의원이 독자 출마해 3자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큰 변수”라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선호도는 최근 한국갤럽 정례 조사(1월 3주차)에서 상위권을 기록한 여권과 야권 주자 각 4명씩 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선정 대상을 호명해 객관식으로 묻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5년 1월 23일~24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가상번호) 면접 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3.3%(7761명 중 1031명)이며 2024년 12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