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의 매출을 뒷받침하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두고 중국의 추격이 매서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차세대 선박으로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HD한국조선해양
‘수퍼 사이클(장기 호황)’을 맞이한 국내 조선업계가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중국의 위협이 매서워지고 있다. 특히 국내 조선업계의 매출을 뒷받침하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경쟁에 중국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해 선종 다양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수익성을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3년 19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한화오션은 지난해 영업이익 2379억원을 기록하며 4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실적 발표를 앞둔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흑자 폭을 늘릴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업계는 HD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을 전년(2823억원) 대비 5배로 늘어난 1조4207억원, 삼성중공업 영업이익을 전년(2333억원) 대비 2배로 늘어난 4747억원으로 추정했다. 조선 3사의 동반 흑자는 지난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 수주해 수익성을 높였다. 사진은 지난해 4월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열린 K-조선 대형 LNG선 수출 500호 달성 선박 명명식 모습. 연합뉴스
도크(선박 생산시설)가 한정된 조선사들이 실적을 개선할 수 있었던 건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해 수주했기 때문이다. 영하 163도의 액화 가스를 운반하는 LNG선이 대표적이다.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는 LNG선의 가격은 2억6000만 달러(약 3700억원)에 이른다. 지난 20일 삼성중공업이 오세아니아 지역 선사로부터 수주한 LNG선 1척 가격은 3796억원이었다. LNG선은 지난해 기준 국내 조선업계 상선 매출의 약 50%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선박으로 자리 잡았다.
LNG 운반선은 국내 조선업계 상선 매출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 모습. 사진 삼성중공업
문제는 LNG선을 싹쓸이하던 국내 조선업계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1년 87%에 달했던 국내 조선업계의 LNG선 수주 점유율은 지난해 60%대까지 밀렸다. 국내 조선소를 밀어내고 LNG선 수주를 따낸 건 ‘조선굴기’를 선언한 중국이었다. 영국 선박가치평가업체배슬스밸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LNG선 41척(38%)을 수주해 68척을 수주한 한국(62%)에 이어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중국은 지난 2012년 제18차 당 대회에서 ‘해양 강국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육성했다. 지난 2022년엔 프랑스 기업 GTT와 LNG선 건조를 위한 기술 지원 계약을 맺고 LNG 화물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NG 화물창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GTT는 국내 조선사를 비롯해 글로벌 조선 업계에서 LNG선 기술 로열티를 받고 있다.
'조선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지난해 LNG선 41척(38%)을 수주해 한국(62%)에 이어 신규 수주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사진은 중국 다롄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052D형 구축함(왼쪽)과 055형 순양함 모습. 사진 웨이보
올해 LNG선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수주 경쟁이 더 치열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 백악관에서 바이든 행정부 때 중단했던 LNG 신규 수출을 재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글로벌 LNG 물동량이 늘면 LNG 운반선 수요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란 관측이다. 실제로 미쓰이OSK라인스 등 일본 3대 선사는 최근 모두 합쳐 234척의 LNG선 규모를 2031년까지 345척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LNG 수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물동량 증가 기대감으로 선주들이 LNG 발주를 늘릴 수 있다”라며 “선가 상승의 모멘텀으로 작용해 수주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취임식 직후 미국의 신규 LNG 수출을 재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의회 의사당 내 중앙홀(로툰다)에서 열린 4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LNG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2021년 이후 LNG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며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탱커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었다”라며 “향후 LNG선 발주 감소에 대비해 선종 다양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탄소 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어날 예정”이라며 “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동력원 개발에 집중해 중국과 다시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23년 국제해사기구(IMO)는 순차적으로 친환경 선박을 도입해 2050년까지 해운산업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오삼권 기자 oh.sam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