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잠룡으로 평가받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움직임에 정치권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김 전 지사는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와 가까운 인사는 “12·3 계엄이 터진 이후 독일에서 급히 귀국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선 출마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레이스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다.
김 전 지사는 노무현-문재인을 잇는 계보에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적자(嫡子)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엔 봉하마을로 내려가 수행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사후에도 중앙의 정치를 잠시 멀리하며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20대 국회의원으로 중앙에 돌아온 후에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수행 겸 대변인 등을 맡았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형을 받아 경남지사직을 상실했지만,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면서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났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도 공교롭게 대부분 이재명 대표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정책연구소 ‘일곱번째나라랩’ 대표인 박광온 전 의원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강병원·윤영찬 전 의원은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공천 평가 결과를 직접 공개하며 ‘비명계 학살’을 주장했던 이들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경수 캠프의 미리 보기가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했다.
김 전 지사는 29일엔 당의 화합을 강조하며 이 대표와 친이재명계를 향해 지난 총선 과정에서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모욕·폄훼 발언 등을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최근 이 대표가 정치 보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통합과 포용의 원칙이 우리 당 안에서 구현된다면 이기는 길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며 “2022년 대선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와 총선 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에서 멀어지거나 떠나신 분들이 많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기꺼이 돌아오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란세력 단죄를 위해 필요하지만, 그 칼끝이 우리 안의 다른 의견과 다양한 목소리를 향해서는 안 된다”며 “일극체제, 정당 사유화라는 아픈 이름을 버릴 수 있도록 당내 정치문화를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지사는 정치권 인사를 두루 만나는 데에 시간을 쏟아오고 있다고 한다. 김 전 지사는 지난 14일에 문희상 전 국회의장을 찾아가 “김대중 재단, 노무현 재단이 협력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행사를 개최하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전직 원내부대표단이 함께한 부부 동반 모임에 등장했다.
다만 극복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20~22일 진행한 전화면접 방식의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김 전 지사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지지율은 고작 1%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28%, 우원식 국회의장 3%, 김동연 경기지사 2%보다 높지 않았다. 한 친명 의원은 “김경수가 중앙 정치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다. 이재명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서 “과거 ‘드루킹 사건’ 논란도 있어 확장력도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