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력 강화" vs "완전한 비핵화"…김정은·트럼프 본격 기싸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며 미국을 압박한 날 미 백악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 행정부 출범 직후 북·미가 각각 상반된 최종 목표를 재확인한 셈이다.

김정은 "핵전력 강화, 증산 실적으로 추동하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 동지께서 핵물질 생산 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면서 홍승무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동행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 동지께서 핵물질 생산 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면서 홍승무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동행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조선중앙통신은 29일 김정은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를 방문해 “(핵)물리력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김정은이 방문한 일시·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적수를 제압할 절대적 힘은 선언이 아니라 실제 가용한 물리력의 비축, 기하급수적인 증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주권과 이익, 발전권을 믿음직하게 담보할 수 있는 핵 방패의 부단한 강화는 필수 불가결”하며 “국가의 압도적인 핵전력 강화를 증산 실적으로 추동하라”고 주문했다.

 
북한이 해당 시설에 대해 자세히 밝히진 않았지만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로 추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해 9월 미 대선 전에도 평양 인근 강선으로 추정되는 HEU 시설을 공개한 적이 있다. 이후 4개월 만에 공개한 이번 시설은 바닥·천장의 마감재가 달라 강선과는 또 다른 농축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플루토늄 재처리 방식의 핵물질 제조 시설보다 열 감지 등이 어려워 은폐가 쉽기 때문에 미국이 특히 민감해하는 북한의 핵 시설로 꼽힌다. 이번 행보가 대미 겨냥용 메시지란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더 많이 생산할 거란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는 건 회의론이 불거지는 워싱턴 조야를 겨냥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정은은 이날 “적대 세력”, “적대국들”을 거론하면서도 미국이나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다. 이는 미 정상에 대한 직접 비난을 피해 대화의 여지를 남겨뒀다는 평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먼저 치고 나간 샅바 싸움에 김정은의 고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핵 시설 시찰로 핵 포기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을 자제하는 소심한 행보가 이런 고심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미 백악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추구"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의 보도 공개 시점과 거의 비슷한 시각 미 백악관은 28일(현지시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확인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적인 대북 정책 목표를 처음으로 밝혔다.

브라이언 휴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중앙일보에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좋은 관계였으며 그의 강인함과 외교력을 배합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최초의 정상급 공약을 끌어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1기 때 김정은이 직접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점을 상기해 약속 이행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분과 실무적인 핵 협상을 분리하는 ‘투 트랙 기조’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1기 세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북·미 양측이 각자 쥐고 있는 패를 이미 알고 있는 만큼 2기 협상은 양측이 테이블에 마주 앉는 단계부터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임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선 협상 입구에서 한·미 연합훈련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중단시키는 성과를 얻어낸다면 협상에 응하려 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김정은은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 역시 고려해야 한다”며 “수위 높은 트럼프의 대화 재개 압박을 완전히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병 북한군 유류품서 韓삼성폰"=한편 러시아에 파병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사살된 북한군 병사의 유류품에서 삼성 휴대전화와 한국어로 된 명령 문서, 김정은의 편지 등이 발견됐다고 미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가 29일 보도했다. 

매체는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SFO)이 러시아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한군 2명을 사살했다며 전사자들이 소지하고 있던 광학 조준기 등이 장착된 AK-12 돌격 소총 등의 장비와 기타 유류품의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군의 유류품으로는 신분증과 삼성 로고가 있는 2G 휴대전화, "손들어" 등의 우크라이나어 표현이 한글로 적힌 메모, "동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는 김정은의 편지가 포함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김정은의 편지 작성 날짜는 2024년 12월 3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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