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무산 우려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유통법 개정을 규제개혁 1호로 삼고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1년 전인 지난해 1월 22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규제를 폐지하고, 영업시간 제한(오전 10시~ 자정)도 풀어 야간·새벽 시간대 온라인 배송업을 허용하는 등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어 2월 “즉각 대응”(국무회의), 4월 “21대 국회 임기 내 법안 통과”(후속조치 점검회의)등 의지를 보였었다.
개정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유통업계의 기대가 커졌지만 21대 국회는 진척 없이 막을 내렸다. 22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이 다시 발의됐지만 12월 이후 안갯속이다. 상임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야당에서는 오히려 의무 휴업 대상 확대 등 규제를 강화할 태세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형마트에 더해 백화점·면세점·아울렛까지 이런 규제를 확대 적용하거나(정혜경 진보당 의원),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지정하지 못 하게 하는(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 법안 등이 발의돼 있다. 야당이 주도권을 쥔 국회 상황상 기존 규제 해소는커녕 규제 강화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은 ‘대기업을 규제하면 표 얻는 데 도움된다’는 인식이 강해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된다면 유통 규제를 푸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소매 유통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유통 규제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꾸준했다. 유통법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2013년 4월부터 시행됐지만 기대한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마트 인근 자영업자 등이 덩달아 피해를 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며 실효 논란이 일었다. 이에 지자체들은 조례를 통해 의무휴업일을 평일 등으로 바꾸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78곳(약 34%)이 대형마트 휴업일을 평일로 바꾸는 조례를 도입했다. 서울 서초구는 영업시간 제한도 풀어 새벽배송을 허용한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젠 이커머스 플랫폼에 오프라인 마트가 밀리는 상황인데, 규제는 온통 오프라인 업체에 집중돼 있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식자재 마트나 농협하나로마트 등은 규제를 안 받고,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대형마트 점포만 규제하는 등 불공정한 내용도 많다”고 덧붙였다.
유통법 때문에 대형마트는 새벽배송 경쟁에서도 발목이 잡혀 있다. 기존 매장을 물류거점으로 쓰면 전국권 서비스가 가능한데 야간시간엔 점포를 열 수 없어서다.
경쟁 자체를 막아버리는 사이 쿠팡은 최근 3년(2021~2023년) 연평균 33%가량 매출이 늘었고, 알리·테무 등 차이나커머스들도 국내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 배송 경쟁에 뛰어들었다. 류성원 한국경제인협회 산업혁신팀장은 “당장 법개정이 어렵다면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거래라도 할 수 있게 풀어 달라라는 게 유통업계 호소”라며 “대형마트가 고용 창출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소비자 불편도 있으니 마트와 시장이 상생할 수 있게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