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여쭸을 때 ‘먹고 살려고 활을 들면 사냥에 쓰이지만, 활에 시위를 달아 하프로 사용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활을 하프로 만드는 문화정책을 펼쳐라’고 하셨다. 장관님이 비옥하게 다져놓은 토양이 오늘날 우리 문화가 결실을 이루어내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실감할 때가 많다.”(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대의 지성’ ‘영원한 소년’으로 불렸던 이어령(1934~2022) 초대 문화부 장관 3주기 추모식이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생전에 문학박사이자 문학평론가, 월간 『문학사상』 주간이었고 중앙일보를 포함한 여러 신문 논설위원과 이화여대 석좌교수, 문화부 장관 등을 지낸 고인을 기리며 문화예술계 관계자 150여명이 함께 했다. 연극배우 박정자씨가 고인의 시 ‘메멘토 모리’를 낭독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이근배 시인이 추모시를 헌정했으며 바리톤 최현수씨와 소리꾼 장사익씨가 무대에 오르는 등 추모식 자체가 한편의 문화공연을 방불케 했다.  

유인촌 장관은 추모사에서 “장관 재임 시절 국립국어원의 전신인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창립함으로써 문화발전의 씨앗을 뿌리고 이후엔 학자, 작가로서 대한민국 곳곳에 창조적 혁신을 이루셨다”고 회고했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전 이화여대 총장)도 “선생님의 언어와 붓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다시 AI로 한걸음 앞서가는 디지로그 시대를 선언하면서 창조의 새벽을 열었다”면서 “나라가 어려울 때 어진 재상을 생각한다는 옛말처럼 혼돈의 시대적 난국에서 명철하신 선생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김주연 문학평론가는 ‘이어령과 그의 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고인이 모더니스트이자 낭만주의자이며 문화의 물적 토대에 깊은 관심을 가진 선구자였다고 돌아봤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중이던) 스물 두 살에 발표한 대표적 평론 ‘우상의 파괴’는 문단의 모든 인습과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문학시대를 여는 선언문이었다”면서 “낭만주의자이자 창조적 비평가 이어령의 탄생을 확실히 했다”고 했다. 특히 그의 광폭 행보를 돌아보면서 “문학평론가가 언론인, 행정부장관까지 지내고 서울올림픽 개회식 준비위원장을 맡은 건 놀랄 만한 사건”이라며 “이미 반세기 전에 문화 전반을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축소지향의 일본인』 같은 노작들을 남겼다”고 평했다.

이 외에도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희섭 국립중앙도서관장,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등이 참석해 고인의 부인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등 유족에게 그리움의 말을 전했다.


이날 강인숙 관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어령기념사업회와 영인문학관을 합쳐서 이어령문화재단으로 출범시켰다”고 공개했다. 또 “고인이 남긴 자료가 8테라바이트에 이르는데, 이를 모두 조사해서 평론가로서, 대학교수로서, 장관으로서 각각 팠던 여러 우물을 점검하는 ‘이어령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영인문학관은 가장 먼저 에디터로서 면모를 조명하는 ‘이어령의 〈문학사상〉전’(4월18일 개막)을 시작으로 격년 주기의 이어령 전시를 이어가게 된다.

3주기를 기념해 고인의 말과 글을 정리한 책도 2권 출간됐다. 이날 발간된  『이어령의 말』(세계사)은 그가 남긴 수십권의 저서 안에서 인생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어록’들을 골라 사전처럼 소개했다. 예컨대 ‘행복’이란 낱말을 통해선 “갓난아이를 열 배로 확대시켰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재산을 배로 늘린다고 하여 행복이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치와 비전을 갖고 일을 하면 아무리 천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활동이 된다. 즉 행복에 대한 해답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고 들려준다. 25일엔 농림수산식품부 특강(2010), 한국표준협회 대한민국창조경영인상 시상식 특별강연(2009) 등 기업 경영인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 9편이 『이어령, 스피치 스피치』(열림원)로 묶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