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 발간일인 2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책이 진열돼 있다. 뉴스1
그러면서 한 전 대표는 “대통령이 처한 지금 상황에 대해선 정말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면서도 “사적인 섭섭함이 있다면 임무를 마치고 난 뒤, 새털같이 시간이 많을 때 이야깃거리처럼 대화를 나누면 된다”고 썼다. 그는 “오랜 사적 관계에도 ‘네가 어떻게 감히’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저는 그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역사에서 좋은 정치가 펼쳐졌을 땐 공사 구분이 엄격했을 때”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향한 여권 일각의 ‘배신자’ 주장과 관련해선 “특정인을 배신했냐, 안 했냐고 몰아가는 정치는 국민에게 해롭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무속 의혹에 대해선 “주류 정치에 무속이 끼어드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며 “물론 대통령이 그 정도로 무속을 믿는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대중이 그렇게 의심하고 우려하는 것만으로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화요일에 계엄 선포한 걸 두곤 “뭔가 비합리적인 이유의 택일이 아닌가란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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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4일 당시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선 “탄핵으로 인해 마음 아픈 분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며 “당과 보수, 대한민국을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판단했지만, 매우 고통스러웠다. 비판은 감당하겠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폭로 계획을 사전 제보받았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다만 자신이 이 소식을 듣고 탄핵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12월 5일 늦은 밤, 신뢰할 만한 당 관계자로부터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홍 차장이 계엄 관련해 대통령으로부터 불법적인 지시를 받은 사실을 정치권과 언론 등에 공개적으로 폭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며 “체포한 정치인 등을 군 수감시설에 수용하려 했다는 얘기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구체적 내용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여기에 상응하는 대응을 해야만 했다”고 썼다.
실제로 계엄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5일 탄핵 반대 의사를 밝혔던 한 전 대표는, 다음날인 6일 오전 당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윤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를 위해 정부기관을 동원했단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 확인했다”며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1차 탄핵안 표결 하루 전에 벌어진 입장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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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한 전 대표의 개헌 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그는 “계엄 사태를 겪으며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를 바꿀 때가 됐다는 것도 실감했다. 1987년 헌법의 5년 단임제는 목표를 잃은 대통령이 이판사판 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든다”며 “이제는 바꿔야 한다. 다만 오늘날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서 보듯 비대해진 의회 권한에도 견제가 필요하다. 사생결단식 전쟁이 벌어지는 소선거구제의 맹점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한편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지금 계엄을 단죄하지 않으면 이재명의 계엄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쓴 대목은 야권 반발을 샀다. 한 전 대표는 “불법 계엄을 해도 조기 퇴진을 거부하고 탄핵도 당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는 전례를 만든다고 가정해보면, 이재명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 전례를 내세워 사법부를 통제하고 자신의 유죄 판결을 막으려고 몇번이고 계엄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한다”고 하자,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나는 국민을 지키는 개가 되겠다. 재판이나 잘 받아라”고 맞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