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86화. 퇴마록


서로 협력하는 다채로운 가능성이 세상을 구한다

오랜 옛날, 삼국 시대에 해동밀교라는 종교가 탄생했습니다. 가야의 왕비가 인도에서 왔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종교는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지며 많은 이에게 도움을 주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145대 지도자, 서 교주가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기 시작한 거죠. 본래 수양이 깊어 존경받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파괴적인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어요. 여러 동물을 제물로 바치며 힘을 얻고자 했던 그는 이윽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끔찍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30년 만에 새롭게 등장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원작의 첫 번째 이야기인 ‘하늘이 불타던 날’을 다루며, 팬들은 앞으로도 풍부한 퇴마 이야기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30년 만에 새롭게 등장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원작의 첫 번째 이야기인 ‘하늘이 불타던 날’을 다루며, 팬들은 앞으로도 풍부한 퇴마 이야기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사람을 돕던 해동밀교가 사악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다섯 호법은, 서 교주를 제압해 몰아내고자 악마를 쫓아내는 구마사,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박 신부를 부르죠. 그 무렵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무공을 수행하던 이현암은 자기 몸을 고칠 수 있는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해동밀교 본산을 찾아옵니다. 여기에 서 교주가 제물로 쓰고자 아들로 들여 여러 주술을 가르쳐준 장준후가 협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렇게 만나게 된 세 사람, 그들은 과연 서 교주의 사악한 음모를 물리치고 해동밀교를 구할 수 있을까요.

최근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1993년부터 연재된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우혁 작가가 쓴 소설 『퇴마록』은 총 20권(해설집 포함, 소장판은 14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임에도 많은 이들이 빠져들어 종이책 누적 판매량 1000만 권을 가볍게 넘긴 놀라운 작품이에요. 원래 뛰어난 의사였지만 귀신에 들린 친구의 딸을 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엑소시스트가 된 신부 박윤규. 훌륭한 스님의 공력을 받아 놀라운 힘을 지녔음에도 여러 문제로 인해 그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술가 이현암. 해동밀교 교주의 제자로서 힌두교의 여러 술법을 바탕으로 중국의 도술과 한국의 무속까지 섭렵한 장준하. 여기에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이면서 사랑을 주관하는 밀교의 신 애염명왕의 화신으로 강력한 신통력을 지녀 동료를 지원하는 현승희. 이렇게 네 명의 퇴마사가 사악한 귀신과 주술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죠.

처음에는 한국을 무대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한 퇴마사들은 이후 세계 각지를 다니며 사악한 조직에 맞서 싸우고, 마지막에는 많은 이들과 협력하여 세계 멸망의 위기를 막아냅니다. 『퇴마록』의 매력은 세계 각지의 다양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음모론이나 유사과학, 오컬트를 뒤섞으며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축했다는 거죠. 네 명의 주인공만 해도 천주교의 구마, 옛 무술, 주술과 도술, 무속, 여기에 밀교 신의 화신까지 다양한 배경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등장하는 사악한 존재들과 주술에서도 세계의 다채로운 전설과 설화를 비롯한 온갖 설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은 고사하고 PC 통신 초창기였던 그 시절에 이토록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하나의 작품에 녹여낸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죠.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는 서점에서 외국 자료를 포함한 수많은 책을 뒤지며 조사했다고 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만 ‘해설집’이라는 책으로 따로 나왔으니 말이죠. 해동밀교를 비롯한 많은 설정은 작가의 창작이거나 또는 음모론이나 유사역사처럼 실제 사실과 거리가 먼 것도 많지만, 그토록 다채로운 내용이 넘쳐나는 이 작품 덕분에 한국 판타지 문화가 발전하고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1998년 영화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관객 동원과는 별개로 원작과 너무도 먼 작품으로 혹평받았고, 이후 소설이 1000만 권 이상 팔리는 동안에도 다시 영상화가 진행되지 않았죠. 소설 연재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게 지난 2025년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원작의 첫 번째 이야기인 ‘하늘이 불타던 날’을 다루고 있어요. 서 교주는 해동밀교의 예언을 바탕으로 오직 해동밀교만이 진정한 진리라는 믿음과 강한 힘을 추구하고 이를 실현하려 하지만, 제각기 다른 믿음과 능력을 지닌 이들이 힘을 합쳐 이에 맞섭니다. 힘으로 강요하는 하나의 진리가 아닌 서로 협력하는 다채로운 가능성이 세상을 구해내는 것이죠. 

세계에는 곳곳에 여러 신화와 전설, 그리고 설화가 존재하며 이들에 우열은 없습니다. 종교도 신화도, 그리고 온갖 이야기들 역시 마찬가지죠. 사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있을지언정 모두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입니다. 수많은 책에서 얻은 온갖 설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낸 ‘퇴마록’은 바로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죠. 세대도 성별도, 물론 생각도 모두 다른 네 명의 퇴마사가 펼쳐내는 ‘퇴마록’. 앞으로도 이처럼 다채로운 설정이 뒤섞인 판타지가 풍부하게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물론, ‘퇴마록’ 애니메이션의 후속작도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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