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은행의 최근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2%에 머물 전망이다. 지난 11월 전망 때보다 0.3%포인트나 낮아졌다. 민간소비 부진이 결정타다. 한은 관계자는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폭설·한파 등 기상 요인까지 겹쳤다”며 “당초 예상보다 회복이 더딜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1분기부터 2024년 1분기까지 분기 평균 0.55%(전 분기 대비)씩 성장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근 네 분기 동안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도 성장률을 확 끌어올리지 못하는 저성장 고착화 국면”이라고 말했다.
이는 신(新)산업 부재, 생산연령인구 감소, 낡은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 집중만 더욱 심해졌을 뿐 20년 전과 거의 그대로다. 컴퓨터·영상기기가 빠지고, 디스플레이·가전제품이 진입한 정도다. 중국의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는데도 구조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조선·해운업이 큰 위기를 겪은 게 불과 10년 전이다. 최근엔 철강·석유화학이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다.
‘피크 코리아’ 신호 선명…“한국도 잃어버린 30년 시작”
연간으로 봐도 저성장 흐름은 뚜렷하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 지난해엔 2%에 턱걸이했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1.5%, 내년은 1.8%다. 1%대 저성장 흐름이 4년째 이어지는 셈이다. 이 역시 한국이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키우지 않고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다”며 “과거 고도성장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1.8%면 위기라고 하는데 이게 우리의 실력”이라고 말했다.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외면해온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상경계열 교수 111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에 접어들었다는 ‘피크 코리아’ 주장에 3분의 2가 동의한다고 했다. 이들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41.8%) ▶신성장동력 부재(34.5%)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낮은 노동생산성(10.8%)을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앞으로도 가시밭길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미국발 관세 충격은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과감한 설비 투자를 기대할 상황도 아니다. 트럼프 취임 이후 기업들은 대체 수출시장 개척이나 생산기지 이전에 분주해서다. 소비 부진은 고금리와 더딘 소득 상승이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단기간에 개선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 와중에 내수의 또 다른 축인 건설은 전망이 더 나빠졌다.
매 분기 0%대 초반의 성장을 이어가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한국도 장기 저성장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정식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생산성을 높이는 노동시장 개혁이 필수”라며 “신산업 육성과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재정 지출도 과감히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는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이 성장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민간의 투자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산분리 같은 예전 방식의 규제가 지금의 현실에 맞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