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리튬 광산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23일(이하 현지시간) 상하이거래소 선물 가격을 분석한 결과 21일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톤(t)당 7만4300 위안(약 1500만 원)으로 나타났다. 2차전지가 호황을 누리던 2022년 12월 탄산리튬을 t당 575만 위안(11억6000만 원) 수준에서 거래하던 때가 무색하다. 고점과 비교하면 95% 이상 급락했다. 최근 4년 새 최저 수준이다.

박경민 기자
리튬은 대표적인 2차전지인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스마트폰에도 ‘리튬 이온 배터리’가 탑재된다. 배터리 값이 전기차 제조 비용의 30~40%를 차지하는 만큼 리튬은 귀한 광물이다. 하지만 중남미와 호주, 중국 등 세계 몇 곳에서밖에 나지 않아 전량 수입해야 한다. 하얀 석유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리튬 몸값이 떨어진 건 공급 과잉과 전기차 수요 둔화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 증가세가 둔화하며 리튬 가격 하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북미·유럽에서도 주요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를 감산하는 추세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리튬 공급이 1년 전보다 25% 늘어난 데 이어 올해도 15% 증가할 것”이라며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예상을 밑돌아 리튬 과잉 공급 상황이 2027년까지 지속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으로 실적 부진에 빠진 배터리 업체에 리튬 가격 급락은 ‘단기 악재’다. 배터리 양극재 제조업체는 리튬 가격과 연동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리튬을 비싼값에 사들였지만, (현재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채) 양극재를 싼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연쇄적으로 배터리 업체도 비싼값에 사들인 양극재로 만든 배터리를, 싼값에 팔아야 한다. 원재료 구매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이 다른 데서 오는 '래깅 효과(Lagging Effect)'다.
래깅 효과가 일어나면 지난해가 아닌 올해 실적에서 바닥을 찍거나 최소한 불황이 길어질 수 있다. 실적 그래프가 ‘V자형’ 반등이 아니라 ‘U자형’ 반등에 가까울 수 있다는 얘기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배터리 재고 상황과 글로벌 리튬 공급 현황을 따져 보면 당분간 2차전지 업황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리튬값 하락이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리튬 가격이 지속적으로 안정되면 양극재 가격 인하→배터리 가격 인하→전기차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연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보릿고개를 잘 버텨 살아남는 회사만 향후 실적 반등의 과실을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한 2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리튬 가격이 얼마나 더 내려갈지, 하락세가 지속할지가 실적 반등의 관건”이라며 “보릿고개의 강도와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