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울컥한 마음, 원조 에그타르트 입에 넣자 '사르르'

10년째 신혼여행㉓ 리스본

에그타르트의 고향이 리스본이다. 포르투갈에서는 '파스텔 드 나타'라고 부른다. 리스본 여행의 행복은 '1일 1에그타르트'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에그타르트의 고향이 리스본이다. 포르투갈에서는 '파스텔 드 나타'라고 부른다. 리스본 여행의 행복은 '1일 1에그타르트'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많은 유럽인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도시로 주저 없이 리스본을 꼽는다. 지난해 가을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한 달을 보냈다. 리스본의 11월은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았다. 리스본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연평균 290일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도시 전체가 온화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아내의 여행

리스본의 낭만을 상징하는 노란색 빈티지 트램. 끼익 소리를 내며 코너를 돌 때마다 영화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리스본의 낭만을 상징하는 노란색 빈티지 트램. 끼익 소리를 내며 코너를 돌 때마다 영화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나는 리스본에서 트램을 타는 느린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노랗게 칠한 일명 ‘빈티지 트램’을 타고 도시 곳곳을 누볐다.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평지가 드물어 걷기에는 고달팠지만, 언덕을 오르내리는 트램이 있어 다행이었다. 트램이 한 달간 내 다리가 돼 주었다.

트램을 탈 때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비좁은 골목을 오를 때면 숨이 멎는 듯했고, 덜컹거리며 언덕을 내려올 때면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총 6개의 트램 노선이 도시 구석구석으로 뻗어 있어, 리스본의 낭만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하루는 트램을 타고 리스본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알파마에 갔다. 알파마는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도 알파마만은 무너지지 않았단다. 덕분에 담벼락마다 화려한 아줄레주 타일이 남아 있었다. 마을 언덕에 섰다. 파스텔톤으로 빛이 바랜 집들과 푸른 테주강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였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테주강은 바다처럼 넓다. 푸른 테주강이 리스본의 알록달록한 집들과 잘 어울린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밀물과 썰물이 있는 테주강은 바다처럼 넓다. 푸른 테주강이 리스본의 알록달록한 집들과 잘 어울린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리스본에서 행복한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숙소에는 우리 부부말고도 인도‧네팔‧중국에서 온 5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일터로 나갔고, 저녁 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주로 밤늦게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헤이 투어리스트, 오늘은 뭐 했어?” “오늘도 하루 종일 놀다 왔어?” 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친근한 인사처럼 들렸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를 불편해 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여행자와 이주 노동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은 중산층이 많이 산다는 지역의 카페에 갔다. 어설픈 포르투갈어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조금 섞은 ‘핑가두(포르투갈식 라떼)’와 ‘아바타나두 콩 젤루(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러나 내가 건네받은 건 우유 없는 에스프레소와 얼음 없는 아메리카노였다.  

중년의 종업원이 ‘쳇, 네가 말한 그 음료가 어떤 건지나 알고 주문하는 거야?’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우리가 한 달 내내 핑가두와 아바타나누 콩 젤루만 마시고 다닌 여행자라는 걸 불행히도 종업원은 모르고 있었다. 종민이 우유와 얼음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친 덕분에 나는 겨우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살 찔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매일 다른 가게의 에그타르트를 맛봤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살 찔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매일 다른 가게의 에그타르트를 맛봤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주문 실수는 절대 아니었다. 자고로 포르투갈 사람이라면 핑가두를 매일 한 잔은 마신다. 종업원의 실수는 김치찌개를 된장찌개라고 우기는 꼴이었다. 주문 실수를 빙자한 인종차별 같아서 나는 마음을 쉬이 진정할 수 없었다. 사장까지 불러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진 하지 못했다. 이 집 에그타르트가 너무나도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 황금빛 타르트를 입에 넣으니 불타던 감정이 한순간에 누그러들었다.

알고 계시나. 에그타르트의 고향이 바로 리스본이다. 포르투갈에서는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 이하 ‘나타’)’라고 부른다. 호두과자도 천안에서 먹으면 더 맛있듯, 리스본에서 먹은 ‘나타’도 맛이 남달랐다.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게 커피와 궁합이 잘 맞았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으로 커스터드가 넘칠 듯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타는 리스본 외곽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18세기 초에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보수를 위한 접착제로 달걀흰자를 사용하다가, 남은 노른자 처리를 위해 나타를 만든 게 시초다. 1834년까지만 해도 에그타르트 레시피는 수도원만의 비밀이었다. 종교 단체 해산령으로 수도원이 문을 닫으면서 에그타르트 레시피가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이라는 빵집에 팔렸단다. 오늘날 리스본을 방문하는 여행자 대부분이 이곳에서 당을 충전한다. 빵집으로선 로또를 맞은 셈이다.

리스본을 대표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이른 아침부터 방문객들로 긴 줄이 이어진다. 수도원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리스본을 대표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이른 아침부터 방문객들로 긴 줄이 이어진다. 수도원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건축이다. 해서 ‘시간의 저장소’라 불린다. 포르투갈 특유의 호화스러운 ‘마누엘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덕에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대양을 상징하는 밧줄, 향신료와 열대 식물, 왕실의 문장 등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건축이 가위 압권이다. 이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수많은 여행자가 줄을 선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호카곶의 벼랑 앞에 섰다. 포르투갈 전통적인 범선 캐러벨(Caravel)을 타고 대양으로 나가는 15세기의 탐험가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발아래로 검푸른 파도가 140m 높이의 절벽을 때리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문구를 새긴 표석이 벼랑 앞에 세워져 있었다. 포르투갈 대문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문장이다. 육지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이 풍경은 공포의 끝자락이겠지만, 탐험가들에게는 이 절벽을 떠나 인도 항로와 지구 일주를 완성했던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유럽 대륙의 최서단 호카곶. 낭만에 젖은 여행자들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유럽 대륙의 최서단 호카곶. 낭만에 젖은 여행자들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리스본 한 달 살기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비행시간 : 16시간(주 3회 직항편 운항)
날씨 : 사계절 모두 추천
언어 : 포르투갈어
물가 :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수준
숙소 : 800유로 이상(시내 중심부, 방 한 칸)
부부 여행작가 김은덕, 백종민
김은덕 백종민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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