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에서 조훈현(왼쪽)과 남기철(라이벌이었던 서봉수 9단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이 대국을 펼치고 있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31/0be7cbeb-526f-4ce8-80f3-13578624061f.jpg)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왼쪽)과 남기철(라이벌이었던 서봉수 9단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이 대국을 펼치고 있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이병헌 vs 조훈현
영화에서 이병헌은 조훈현을 빼닮았다. 길게 넘긴 가르마부터 입을 쫑긋 모으거나 왼손으로 턱을 괴는 버릇도 똑같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 쑤셔 넣은 채 잰걸음을 걸을 때는 그냥 조훈현이었다. 조훈현은 걸음이 빠르다. 산에 오를 때도 제일 먼저 올라간다. 조훈현도 “걸음걸이까지 똑같다”며 놀라워했다.
전성기 조훈현의 라이벌이 서봉수다. 영화에서 남기철 8단(조우진)으로 나오는 캐릭터다. 영화에서 둘 사이의 대국 장면이 재미있다. 승부사 조훈현은 엄살꾼이었다. 유리한 바둑인데도 “망했네” “내가 미쳤지” 같은 푸념을 수시로 뱉었다.
바둑이 유리해지면 다리를 떨고, 대국 중에 노래를 부르거나 심지어 책을 펼쳤던 에피소드도 실제 조훈현의 것이다. 젊은 시절 조훈현의 대국 매너는 솔직히 좋지 않았다. 소파에 거의 누워 대국하는 ‘와기(臥棋)’도 종종 연출했다.
한창때 조훈현은 이름난 골초였다. 담배 중에 ‘장미’만 피웠다. 평소에는 두 갑, 대국 중에는 내리 네댓 갑을 피웠다. 대국장에서 흡연이 허락되던 시절, 조훈현 대국이 잡히면 한국기원은 ‘장미’를 미리 사다 놨었다. 조훈현은 긴 손가락으로 긴 장미 담배를 옆으로 문 채 볼이 폭 패도록 깊게 빨았다. 이병헌이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 골초가 제자와의 승부에서 패한 뒤 담배를 끊는다. 그리고 끝내 승부를 뒤집는다. 실제로 조훈현은 금연초 광고에도 출연했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영화에 흡연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 TV에선 보기 어렵겠다”며 아쉬워했다.
유아인 vs 이창호
영화에서 묘사한 청소년 이창호가 어린이 이창호(김강훈)보다 실제 이창호와 훨씬 비슷하다. 영화를 보면 이창호가 남도 사투리를 쓰는데 이창호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이창호의 고향인 전주 사투리와 맞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창호는 영화에서처럼 당돌하지 않다. 말도 거의 없다. 왼손잡이는 맞다. 프로기사가 되고서도 한참이나 이창호는 왼손으로 바둑을 뒀다. 지금은 오른손으로 둔다. 영화에서 클로즈업되는 ‘바나나맛우유’는 소년 이창호가 제일 좋아했던 음료다.
이창호는 17개월 때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가 전국 2위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비쩍 말랐지만, 청소년 이창호는 꽤 통통했다. 영화에서 이창호를 연기한 유아인이 그렇게 살을 찌웠다. 띄엄띄엄 내뱉는 어눌한 말투도 캐릭터를 깊이 연구한 결과다. 이창호는 종종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그 버릇도 유아인이 잡아냈다.
이창호가 신발 끈을 못 매는 에피소드는 사실이다. 이창호는 프로기사 최초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래도 군사훈련은 받았는데, 군화 끈을 묶지 못해 지퍼가 달린 장교용 군화를 신었다고 한다.
이창호는 9세에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갔다. 조훈현은 9세 프로기사가 됐다.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이다. 이창호는 그로부터 2년 뒤 입단했다. 세계 두 번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