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2025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리사이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임윤찬은 이날 한국 신예작곡가 이하느리의 소품과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줬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지난 30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임윤찬이 들려준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은 2004년생인 그가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는지 ‘한계’를 걷어버린 무대였다. 알려진 대로 이 곡은 짧은 아리아(G장조)를 제시한 뒤 이를 30개 변주로 풀어내고 마지막에 아리아를 반복하는 구조다. 임윤찬은 이를 15개, 10개씩 몰아친 뒤 잠시 땀을 닦는 식으로 간격을 둬서 마치 소나타 악장처럼 덩어리가 나뉘게 만들었다.
어떤 대목에선 죽음의 심연으로 꺼지듯 저음 건반을 장중하게 내리쳤고, 분위기를 바꿔선 살랑살랑 봄바람을 만난 듯 옅은 미소를 띤 채 양손을 놀렸다. 마지막 26번 변주부터 30번까지 몰아치는 대목은 마치 라흐마니노프 곡처럼 격정적으로 다가왔다. “장편소설 하나를 끝까지 읽는 게 아니라 1~4부처럼 구분한 듯했고, 마지막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대원문화재단 박문선 사무국장)는 반응이 따랐다.

30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2025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리사이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임윤찬은 이날 한국 신예작곡가 이하느리의 소품과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줬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J.S 바흐(1735-1782) 시대는 피아노가 탄생하기 전이다. 그가 불면증을 호소하는 백작을 위해 수면용으로 썼다는 설이 있는 이 곡은 애초에 하프시코드(쳄발로)라는 건반악기를 대상으로 했다. 피아노곡 흥행작으로 재탄생시킨 글렌 굴드(1932~1982) 이후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가 전곡 연주 명반을 남겼다. 기본적으로 악보 자체에 악상 지시가 세세하지 않아서 임의로 구사할 수 있는 폭이 넓고 페달 사용 여부에 따라 사뭇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아이슬란드 출신 비킹구르 올라프손(41)처럼 이지적·사색적인 해석이 주를 이뤘다.
반면 임윤찬은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는 쪽을 택했다. 때로 ‘이 곡이 그 곡 맞아?’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주곡의 변주’였다. 현장에서 만난 김주영 피아니스트는 “애초에 피아노가 없을 때 만들어진 곡이니까 페달링을 많이 한다, 작게 한다 이런 정의가 없다”면서도 “임윤찬은 악보의 규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피아노의 가능성을 끝까지 실험하는 창의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진회숙 음악평론가는 “후세인들에게 해석 여지를 남겨준 작곡가 바흐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면서 “느린 악장(변주)을 로맨틱하게 해석한 부분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음악가인 임윤찬은 앞서 지난 28일 개막 공연에선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지휘 파비앵 가벨)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30일 리사이틀 땐 신예 작곡가 이하느리(19)가 지난해 작곡한 5분여짜리 소품(제목 ‘Round and velvety-smooth blend’)을 몸 풀듯이 연주했다. 이하느리는 지난해 중앙음악콩쿠르에 최연소로 참가해 작곡 1위를 거머쥔 데 이어 바르토크 국제콩쿠르 1위까지 휩쓴 바 있다.
현장에서 만난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둘이 한예종에서 만나 (두 살 터울에도) 친구처럼 지내는데, 임윤찬이 작곡을 위촉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임윤찬은 이하느리 곡을 마친 직후 그를 무대 위로 불러내 함께 인사하면서 치켜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오는 4월 뉴욕 카네기홀 공연에서도 이하느리의 곡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레퍼토리로 예고한 상태다.

지난 28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열린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가운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개막 공연에서 지휘자 파비앵 가벨이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Journey Inwards'(내면으로의 여행)를 주제로 표방한 통영국제음악제는 오는 4월 6일까지 이어진다. 임윤찬 외에도 덴마크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한스 아브라함센와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가 각각 상주 작곡가와 상주 연주자로 참여했다. 아브라함센의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여섯 개의 소품'은 3일 아시아에서 초연된다. 총 29개 공식 공연에 타계 30주년을 맞는 윤이상과 탄생 100주년을 맞는 작곡가 및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의 주요 작품들이 포함됐다. 음악제는 6일 지휘자 성시연이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전쟁 레퀴엠'(벤저민 브리튼 작곡)과 함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