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거리에 은행 ATM 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1324조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1000억원 줄었다. 대기업(-7000억원), 중소기업(-1조4000억원) 대출이 모두 감소했다. 3월 기준 기업대출이 쪼그라든 건 2005년 3월(-1조2000억원) 이후 처음이다.
통상 기업은 연말 재무비율 관리를 위해 대출을 줄였다가 연초에 다시 늘린다. 분기 말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3월에 마이너스가 된 건 이례적이다. 12월이 아닌 달에 기업대출이 줄어든 것도 2018년 6월(-9000억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우선 미국발 관세 폭탄, 조기 대선 등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의 자금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대기업은 대규모 투자나 채용을 미룬 채 시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박민철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지난해 4분기부터 기업의 전반적인 자금 수요가 줄었고 그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하강 국면이다 보니 은행들이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영업을 축소한 영향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61%로 전월 대비 0.11%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 연체율은 0.05%, 중소기업은 0.77%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기업대출 심사를 너무 엄격히 한다기보다는 경기 부진으로 업체의 재무 상황이나 신용도가 나빠지면서 예전처럼 대출을 해주기가 쉽지 않아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주요 금융그룹은 배당 재원과 직결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 CET1은 지난해 말 기준 13.07%로 전 분기 대비 0.26%포인트 하락했다. 목표치인 13%대를 유지하려면 비우량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여서 위험가중자산(RWA) 낮추는 게 유리하다. 취약 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금융당국은 상호관세로 피해를 본 기업에 대해선 자금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인해 직접 영향을 받는 수출기업은 물론 협력업체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현장에서 거래 기업의 상황과 영향을 밀착 점검하고 필요한 자금 공급과 지원이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히 챙겨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