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0명 중 1명 "일과중 이직 준비"...'도덕적 해이' 지적도

지난해 서울 중구 중구청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뉴스1

지난해 서울 중구 중구청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뉴스1

 
재계 10위권 대기업에 다니던 신입사원 A(27)씨는 최근 입사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직을 결심했다. 그는 “또래보다 연봉이 높은 편이었지만, 회사가 인재에 투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비전도 보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업무시간을 쪼개 채용 사이트를 살펴보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으며, 때로는 연차를 소진해 면접에 다녀오기도 했다.

 
대기업 입사 7개월 만에 공기업으로 이직한 B(27)씨는 “더 나은 근무 여건을 찾아 이직 하게 됐다”며 “야근을 하며 이력서를 작성하고 채용 전형 별 결과를 회사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입사 1년 반 만에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한 C(32)씨도 “퇴근 후에는 시간이 부족해 점심시간이나 야근 중 틈틈이 이력서를 고치며 이직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에서 업무시간을 쪼개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중앙일보가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의뢰해 직장인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00인 이상 대기업에 재직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 50%는 여유시간에, 12.2%는 일과시간까지도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한다고 답했다. 조사에 응한 대기업 직원 10명 중 1명은 업무시간에 이직 활동을 벌인 셈이다. 

지난해 부산에서 개최된 채용박람회에 참여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는 청년 구직자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난해 부산에서 개최된 채용박람회에 참여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는 청년 구직자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인크루트 이명지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은 “'조용한 사직' 다음의 트렌드가 업무 중 이직 준비"라면서 "공채가 줄고 수시채용이 늘며 채용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조용한 사직’은 직장에서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태도로 조직문화나 성과 창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직 트렌드’는 기업의 손해로 이어진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근무 중 이직을 준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금전적·비금전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업무 몰입도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약화시켜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인사관리(HR) 부서의 고민도 깊다. 한 대기업 HR 담당자는 “지난해 신규 직원 중 30%가 1년 만에 이직 사유로 퇴사했다”며 “암암리에 회사에서 구직사이트를 찾아보는 직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를 찾아내거나 징계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대기업 HR 담당자 역시 “대기업도 과거와 달리 회사가 직원의 눈치를 보는 시대”라면서 “업무 시간에 이직 준비를 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복지나 처우가 뒤처지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이탈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온보딩(입사 후 적응) 교육으로 저연차 직원의 이탈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1~2년 차 사원이 신입 교육 프로그램 재설계에 직접 참여시켰다. 현대로템, 현대카드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신입사원 입사 후 약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에서 각사별 온보딩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포스코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1년에 걸친 OJT((On the job training)를 실시한다. OJT 기간동안 신입사원들은 선배사원과 1대1 멘토링을 하며 현업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입사 후 6개월, 1년, 3년차마다 진행되는 정기 간담회 및 교육도 직원의 적응력과 애사심을 키우는 제도다. 포스코 인사담당자는 “간담회에서는 저연차 직원들이 업무나 회사생활서 느낀 제언을 듣고 실제 인사정책에 반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