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환자 2차→3차병원 '급행' 타니 12일만에 수술[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고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강상희 교수가 로봇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대장암 환자 김정남씨는 대림성모병원에서 지난달 20일 샘암종 진단을 받고 강 교수에 의뢰됐다. 12일만인 이달 1일 수술받았다. 김씨는 ″급행 탄 것 같다″고 했다. [사진 고대 구로병원]

고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강상희 교수가 로봇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대장암 환자 김정남씨는 대림성모병원에서 지난달 20일 샘암종 진단을 받고 강 교수에 의뢰됐다. 12일만인 이달 1일 수술받았다. 김씨는 ″급행 탄 것 같다″고 했다. [사진 고대 구로병원]

 한국 의료의 고질적 병폐는 대형병원 쏠림이다. 지방·수도권 할 것 없이 몰린다. 큰 병원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중증 중심 의료나 연구에 집중할 수 없다. 중증 환자도 긴 대기 줄 앞에서 치료 시기를 놓친다. 의대 증원 2000명 파동의 비상 상황이 닥치자 지난해 10월 비로소 '바로 펴기' 작업이 시작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작한 의료개혁의 일부이다. 6개월 지나자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장암 환자 "급행 탄 것 같다" 

 
 #서울 영등포구 김정남(58)씨는 지난해 9월 대변에서 피가 나왔다. 올 2월 대림성모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대장 내시경 검사, 이어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했다. 지난달 20일 샘암종 진단을 받았다. 거기서 진료가 어렵다면서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의뢰했다. 놀랍게도 다음날 대장항문외과 강상희 교수 진료를 받았다. 대림성모의 검사 자료가 활용됐다. 대장암이 확진됐고, 지난달 30일 입원해 이달 1일 수술 받았다. 

의료개혁 6개월, 현장서 성과
2차 병원 의사가 환자 의뢰
예약 별도 배정해 신속 진료
"1차-3차 병원 트랙도 필요"
 김씨는 "대학병원은 오래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진료받고 열흘 여만의 수술 받을 줄 생각도 못 했다"며 "급행열차를 탄 것 같다. 운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끼리 주고받고 외래 진료를 잡아주니 편하다. 대림성모에서 대학병원 세 군데를 추천했는데 고대 구로를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말한다. 

 #30대 A씨는 갑자기 옆구리가 아프고 다리가 부었다. 부산의 B종합병원에서 신장에 이상 증세를 발견했다. 병원 측이 지난달 13일 부산대병원 비뇨의학과로 의뢰했다. 전자 의뢰 시스템에 따라 진행됐다. 지난달 27일 진료 받았고, 양성신생물(혹)로 판정됐다. 암이 아니어서 경과를 두고 보기로 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 사업의 하나인 전문의뢰제가 이렇게 작동한다. 작은 병원 의사가 큰 병원에 환자를 의뢰하는 게 핵심이다. 진료기록부, 상세한 소견서 등을 온라인으로 보낸다. 2차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으면 끝내고, 중증환자는 상급병원에 의뢰한다. 환자가 상급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동네의원의 진료의뢰서를 형식적으로 끊는 지금의 관행과는 다르다. 2차 병원은 종합병원(330개)이나 30~99병상의 중소병원(1400개)을 말한다. 


11개 권역으로 나눠 운영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 상급병원과 2차 병원이 협력관계를 구축한다. 권역 내에서 하되 인접 지역도 된다. 고대 구로병원은 486개, 부산대병원은 86개 2차 병원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2차에서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면 소위 패스트 트랙(급행 진료)을 탄다. 상급병원마다, 대학교수마다 전문의뢰 환자를 위한 전용 진료 시간을 별도로 할당한다. 그래서 김씨는 다음날, A씨는 일반 예약보다 48일 당겨 진료받았다. 협력관계가 아니면 전문의뢰 대상이 아니다. 가령 부산의 2차병원→서울 상급병원은 인정되지 않는다.  

 조희윤 고대 구로병원 진료협력팀장은 "경증환자가 상급병원으로 몰리면 급한 중증환자가 진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는데 이런 걸 막는 데 전문의뢰가 활용된다. 2차 병원의 전문의가 중증 정도를 판단해 우리 병원으로 보낸다"고 말한다. 조 팀장은 "전문의뢰 환자는 최대한 빨리 진료를 잡는다"고 덧붙였다. 이 병원의 평균 대기기간은 8.7일인데 전문의뢰 환자는 4.1일(1월)로 줄었다. 고대 구로병원의 정형외과 서승우 교수는 척추측만증 명의이다. 지금 예약하면 1년 반~2년 기다리는데, 전문의뢰를 활용하면 훨씬 줄일 수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빅5' 병원도 전문의뢰가 뿌리내린다. 흉선암 환자 C씨는 지난달 18일 김포우리병원에서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전문의뢰 됐다. 다음날 흉부외과 외래 진료가 잡혔고, 25~26일 입원해 폐 조직을 떼는 생체검사(CT 가이드)를 받았고, 이달 10일 CCRT(동시 항암 방사선 치료) 치료를 시작했다. 

 전문의뢰제가 정착되면 2,3차 병원의 역할 찾기에 도움이 된다. 지난해 11월 859건이던 전문의뢰 건수가 올 1월 7076건으로 증가했다. 상급병원의 중증환자 비율이 지난해 1월 45%에서 올 1월 52%로 올랐다. 상급병원에서 치료가 끝나면 2차 병원으로 환자를 돌려보낸다. 전문회송도 4565건에서 1만8923건으로 늘었다. 전문의뢰를 비롯한 진료협력 체계 마련에 연간 3300억원, 상종병원 구조조정엔 3년간 10조원이 지원된다. 

동네의원 기능 정립도 시급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은 "상급병원 환자의 30~40%는 2차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 병이다. 지금은 무조건 3차 병원으로 가는데, 전문의뢰제가 확대되면 의료 전달 체계를 바로잡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 실장은 "사업의 성과를 평가해 잘 하는 병원에 지원금이 더 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의 맹점도 있다. 1-2-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 체계의 큰 축인 1차 의료기관(동네의원)이 빠져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1차 의료기관에서 중요 이상 증세를 발견하면 3차로 보내는 전문의뢰 트랙이 필요하고, 그럴 정도가 아니면 2차로 보내도록 1-2차를 연결해야 한다"며 "1차 의료기관이 환자를 지속적·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