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숨진 봉천동 방화 용의자…"망치로 천정 '쿵쿵' 때려 소음 유발"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방화 용의자가 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지난해까지 화재가 난 곳 아래층에 거주한 용의자는 층간 소음 문제로 자신에게 항의했던 위층 주민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용의자와 다퉜던 윗층 주민을 포함해 2명이 화상을 입고 추락하는 등 모두 6명이 부상을 입었다.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21층 규모 아파트에서 불이 나 방화 용의자 1명이 사망하고, 2명 중상 등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21층 규모 아파트에서 불이 나 방화 용의자 1명이 사망하고, 2명 중상 등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합뉴스

 
21일 관악경찰서와 관악소방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17분 봉천동 소재 21층짜리 복도식 아파트 4층의 두 곳에서 불이 났다. 경찰 관계자는 “농약살포기로 추정되는 도구로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소방 당국은 “폭발 소리와 함께 불이 났다”,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진화에 나섰다.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지문 등을 검사해 아파트에서 사망한 1명이 용의자 60대 남성 A씨라는 점을 확인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선 A씨 소유의 오토바이도 발견됐다. 뒷좌석엔 기름통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와 사건과의 관련성을 확인 중이다”고 설명했다.

A씨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기 전 자신이 거주하던 빌라에서도 방화를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오전 8시4분쯤 아파트로부터 약 1.4㎞ 떨어진 봉천동 소재 한 빌라 앞에서 한 남성이 쓰레기 더미에 분사기로 불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이 역시 A씨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A씨가 흰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기름통을 옆에 두고 농약 살포기로 추정되는 물건을 사용하는 모습이 올라오기도 했다.


빌라 인근에 거주하는 한 80대 남성은 “A씨가 인근 골목 세 군데에 기름통을 쏟아 불을 질렀다. 그중 한 곳은 A씨가 자주 다툼을 벌이던 공사장”이라며 “평소에도 ‘뭘 쳐다보냐’며 주변 사람들을 위협했다”고 말했다.

A씨의 주거지에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가 발견됐다. A씨는 딸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며 병원비에 보태라는 취지로 5만원을 동봉했다 한다. 

경찰은 A씨가 과거 층간 소음 문제로 빚었던 이웃과의 갈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까지 해당 아파트에 살았던 A씨가 천장을 망치로 추정되는 물건으로 치거나 새벽에 악기를 연주하는 등 윗집에 소음을 유발하는 일이 잦았다”고 밝혔다. 이날 불이 난 아파트 4층 두 곳 중 한 곳은 A씨와 갈등을 빚었던 이웃이 살던 집 앞이었다. A씨는 소음 문제로 거주 기간인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거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9월 A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 주민과 서로 몸싸움까지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 다만 서로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처벌은 받지 않았다. 주민 박모씨는 “A씨가 위층 주민들과 소음 문제로 자주 다퉜다. 그 과정에서 A씨가 소리를 질러대서 주민들이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층간 소음 등 원한에 의한 방화 등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라며 “A씨가 정신 질환 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봉천동 방화 용의자 A씨(사망)는 아파트 화재 발생 전인 이날 오전 8시 4분쯤 아파트에서 1.4km 떨어진 봉천동의 한 빌라 앞에서도 방화를 저질렀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봉천동 방화 용의자 A씨(사망)는 아파트 화재 발생 전인 이날 오전 8시 4분쯤 아파트에서 1.4km 떨어진 봉천동의 한 빌라 앞에서도 방화를 저질렀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날 화재로 아파트 주민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불이 난 4층에서 불길을 피하려다가 추락한 고령의 여성 두 명은 전신 화상 등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불이 난 호수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복도로 대피하지 못하고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위태롭게 있다가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4층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불길 때문에 건물 자재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외에 4명은 경상자다.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진화 후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진화 후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근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김모(43)씨는 “펑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연기 나고 있었고 이후 창문 밖으로 불이 보였다. 살려달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전했다. 옆 동에서 거주하는 60대 남성은 “베란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고, 안테나선 같은 걸 잡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소방은 오전 8시 30분 소방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섰다. 소방은 오전 9시 15분쯤 큰불을 잡고, 9시 54분쯤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