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경북 안동시 권정생 어린이문학관 터에 설치된 안동시 1호 임시주택(모듈러주택)의 입주가 시작된 가운데 한 이재민이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듈러주택 18동이 설치됐으며 1동당 30㎡로 현관, 욕실, 침실, 발코니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모듈러 주택은 거실과 방이 구분되지 않은 원룸형 구조로, 화장실만 독립적으로 분리된 형태였다. 다소 협소하지만 이재민 여럿이 함께 임시 텐트에서 생활했던 임시 대피소보다는 나은 환경이었다.
총 18가구 규모로 조성된 모듈러 주택에 이날은 우선 4가구가 입주했다. 냉장고·세탁기·밥솥 등 일부 가전과 함께 쌀·음료수 같은 긴급 구호품도 함께 전달됐다.
산불에 집 잃고 임시주택 입주

지난달 31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권정생어린이문학관 앞에 산불 피해 이재민을 위한 모듈러 주택 설치가 한창이다. 뉴스1
일직면에 사는 한 이재민은 “평생 살아온 집과 살림이 불타고 거동도 어려워 너무 힘들다”며 “빠른 입주를 할 수 있게 도와준 경북도와 안동시에 감사하다. 주변에 피해를 당한 많은 이재민도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상황이다. 마을이 회복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일주일간 경북 북부지역을 휩쓴 ‘괴물 산불’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경북 의성을 시작으로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시·군을 초토화시킨 초대형 산불은 자그마한 불씨로 시작됐지만 피해 규모는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산불 진화 헬기 조종사 1명을 포함해 총 27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잿더미가 된 산림 면적도 9만9289㏊로 잠정 집계됐다. 축구장 13만9060개와 맞먹는 규모다.
불은 모두 꺼졌지만 화마에 집을 잃고 이재민이 돼버린 이들이 아직 3494명(19일 기준)에 이른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머무르는 이들이 1141명으로 가장 많고 호텔 등 숙박시설에서 지내는 경우가 1086명, 연수원·교육원 369명, 친척집 603명 등으로 파악됐다.

지난 10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리에서 한 이재민이 새카맣게 불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있다. 뉴스1
산불이 집어삼킨 주택은 경북에서만 3819채. 이 중 3563채가 전소됐다. 경북도는 집을 잃은 이들에게 1년간 머무를 수 있는 임시주택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그 속도는 더디다. 임시주택 수요 조사에서 약 2700채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된 반면 아직 설치는 60여 채에 불과하다.
“1년 뒤엔 다시 떠나야” 한숨
나아가 경북도는 이재민들이 기존에 살던 곳에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마을을 재건하는 사업도 추진할 방침이다. 이재민들이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동안 산불 피해자들을 위한 주택단지를 만들어 이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경북도는 정부에 ‘경북 초대형 산불 피해복구 및 지역재건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
산사태와 수질오염 등 대형산불의 ‘2차 피해’ 우려도 여전하다. 특히 산불로 산림이 파괴된 상황에서는 산사태 위험이 크게 높아져 주민들의 불안감도 높다.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야산의 소나무숲이 산불에 타버린 모습. 김정석 기자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살고 있는 곽철환(63)씨는 지난달 25일 갑자기 번진 산불에 집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바로 앞에서 산불이 멎으면서 집은 무사했지만 마을 전체에 전기가 끓겨 열흘 가까이 이재민 생활을 해야만 했다.
산사태 ‘2차 피해’ 걱정도 커져
실제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펴낸 ‘2025년 산불 제대로 알기’ 보고서에 따르면 산림과학원이 2005년 전북 남원지역 산불피해지를 5년 뒤 조사한 결과 산사태 발생 비율이 일반 산림지역에 비해 200배나 높았다. 2000년 동해안 산불 발생 후 2년이 지난 시점에 피해지 토사량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일반 산림보다 토사 유출이 3~4배 많았다.

산불 피해 지역에서 산사태가 쉽게 일어나는 원리. 사진 산림청 '2025년 산불 제대로 알기'
경북도 등은 우선 생활권 주변 지역의 산불 피해목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벌채와 산사태 등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사방사업 등 응급복구를 연내 완료한다는 목표다.
조현애 경북도 산림자원국장은 “피해 지역을 신속 복구해 주민들이 2차 피해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