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 들어달라"며 모인 의사들, 문·이과 갈라치기만 했다 [현장에서]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 참가자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운영 등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 참가자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운영 등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이 의대생·의사들을 절박하게 만들었는지 세세히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란다."(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
20일 의대생·전공의 등 2만5000명(대한의사협회 추산)이 서울 숭례문 인근 도로를 가득 메웠다. 이날 의협이 주도한 '전국의사궐기대회'는 중간 공연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엄숙한 분위기였다. 

집회 사흘 전 정부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 3058명을 확정하면서 '의대 증원 후퇴'를 공식화했지만, 투쟁 강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이들은 필수의료패키지 등 의료개혁 중단과 정부 책임자 문책 주장을 고수했다. 일부 참석자는 발언 중 울컥하기도 했다.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대국민 호소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나온 발언 상당수는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의정갈등 해법'이 아니라 '문과·이과 갈라치기' 등에 집중됐다. 최근 논란이 된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의 "조선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X들이 해 먹는 나라" 발언을 활용해 '대화 상대' 정부를 맹공하는 식이었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이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이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창수 의협 정책이사는 "정부는 '조선반도 문과 DNA'만으로 삼라만상의 모든 지혜가 모두 내 책상 위에 있다는 오만함이 있다"고 말했다. 이선우 의대협 비대위원장은 "학생들 증원은 의료시스템, 현장 목소리 두 가지 고려 없이 탁상에서만 노는 문과 관료들의 태만과 무능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의료개혁을 추진했다며 '문과 정부'를 비판하지만, 정작 '이과 의대생'은 다른 학과 학생들에 비해 유급·제적 처리 등에서 엄청난 배려를 받았다. "이과가 우월하고, 의사가 잘났다는 건데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표현이다." 집회 후, 익명을 요청한 의대 교수가 내놓은 쓴소리다.


이날 집회에선 1년 2개월 의정갈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환자와 국민에 대한 사과, 자기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가 죄인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국민 눈높이를 고려하는 대신 의료계만의 '절박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2시간 내내 이어졌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 성격도 국민을 설득하기엔 거리가 멀었다. 이날 연단 분위기를 두고 "2025년 4월이 아니라 2024년 4월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는 평가가 의료계 안팎에서 나왔다. "의사가 될 때까지 무사히 공부하고 졸업하는 미래를 꿈꾼다"(이선우 위원장)면서도, 이미 지나간 과거인 '윤석열 정부'에 여전히 매여 있어서다. 

전공의 처단 포고령을 낸 대통령은 파면됐는데, 김택우 의협 회장은 "돌아갈 명분이 없다"고 외쳤다. 정부가 의대 증원에 사실상 '백기'를 든 만큼, 의료계도 양보하거나 구체적 대안을 내겠다는 이는 없었다. 세(勢)를 과시하듯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강성 발언만 남았다. 이를 두고 의료계 관계자는 "결자해지해야 하는 건 정부가 아닌 의료계"라고 꼬집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독립운동하듯 투쟁만 내세우는 주장 뒤에 힘들게 버틴 환자와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를 바꾸지 않는 이상 의료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쉽지 않다. 진짜 환자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병원과 학교로 돌아온 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싸우는 이유는 오직 하나,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김택우 회장의 이날 발언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