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항구에서 어민들이 돌미역 작업을 하고 있다. 뒤로 불길에 전소된 배의 잔해가 남아 있다. 조경래 국립청소년해양센터장 제공
지금도 불에 탄 마을을 지날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요.
경북 영덕군 국립청소년해양센터내 대피소에서 만난 이미상(65)씨는 한 달 전 불덩어리가 마을로 날아왔을 때의 끔찍한 광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따개비 마을’로 유명한 석리 이장이다. 바닷가 언덕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양이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다고 해 붙여졌다.

10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따개비 마을이 산불에 파괴돼 있다. 뉴시스
점점 불어나는 산불 피해…서울 1.5배 탔다

정근영 디자이너
행정안전부·산림청에 따르면, 경북 산불의 피해 면적은 9만 9289㏊로 잠정 집계됐다. 서울시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산림청이 산불 진화 직후 파악했던 산불 영향 구역보다도 두 배 이상 크다. 시설 피해액은 1조 1306억 원으로 확인됐다. 영남 산불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만 1조 4000억 원의 추경 예산이 투입된다.
인명 피해도 역대 최대 규모다. 27명이 사망했으며,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717세대, 289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7년 전 보고서에 “인명피해 중심 진압 체계 구축”

지난달 24일 경북 의성군에서 한 여성이 산불로 발생한 연기 주변을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산불 대응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을 때마다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듬해 산불이 잠잠해지면 다시 손을 놓아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림청은 강원도에 대형산불이 발생한 이듬해인 2018년에 392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산불통합관리체계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해당 연구 보고서는 인명 피해 예방을 중심으로 산불 진압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다양한 정부 기관과 지자체가 따로 화재에 대응하다 보니 중복·혼선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농기계 등을 동원해 마을 단위로 주수(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미리 물·약재를 뿌려두는 행위)를 하는 것 역시 대책으로 제시됐다. 실제로 경북 산불 당시 안동시 임하면의 한 마을에서는 주민이 농약살포기에 물을 담아 집집마다 뿌린 헌신 덕에 쑥대밭이 된 이웃 마을과 달리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런 대책이 실행되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에서 밤새 번진 산불로 무너진 가옥 앞에 불에 탄 농기계가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 ▶산불취약지역 허가 기준 강화 ▶산불 차단 기반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사전산불영향평가제도 도입 등도 거론됐지만 대부분 적용되지 못 했다. 보고서 역시 비공개 된 채로 사실상 잊혀졌다.
“헬기 통합 관리” 논의했지만 무산
당시 기획단에 참여했던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부 조직별로 각자 헬기를 별도 운영해야한다는 명분이 있어 결국 무산했지만, 국민 관점에서 보면 부처간 칸막이나 조직 이기주의로 볼 수도 있던 사안이었다”며 “산불이 역대 최악의 인명 피해를 양산한 시점에서 헬기 자원의 효율적 운영 방안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빠른 불, 더딘 경고…“대피 체계 개선해야”

지난달 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삼의계곡에 전날 발생한 산불에 불탄 차량이 보존돼 있다. 이 차량 인근에서 산불 대피하다 숨진 3명이 발견됐다. 연합뉴스

김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