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살로 살아갈 것인지" 묻는 천국행 공무원의 질문에 이해숙(김혜자, 왼쪽)은 많은 고민없이 80세라고 답한다. 평생을 아끼고 의지해 온 남편 낙준(손석구)이 자신과 쌓은 시간이 보이는 지금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자신있게 말했기 때문이다. 사진 SLL
지난 19일 첫 회를 선보인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이런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지난 13일 10.3%의 시청률로 종영한 드라마 ‘협상의 기술’ 후속작인 이 드라마는 1화 5.8%, 2화 6.1%(닐슨코리아 조사 결과)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아내 해숙(김혜자)은 “당신은 지금이 제일 예쁘다”던 남편의 말을 떠올리며 천국에서도 80대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막상 천국에 도착해보니 냉큼 30대로 돌아가버린 남편 낙준(손석구)이 기다리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둘의 부부 생활은 마냥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둘은 고됐던 이승에서의 삶과 그간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했던 기억을 나누며 천국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눈이 부시게’(2019)와 ‘나의 해방일지’(2022)를 연출한 김석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눈이 부시게’의 이남규·김수진 작가가 뭉쳤다. 김 감독의 전작에 각각 출연했던 배우 김혜자와 손석구가 부부로 합을 맞춘다. 실제 84세인 김혜자는 지난 18일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가 저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인간 사이의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같은 자리에서 손석구(42)는 “드라마를 찍으며 저 또한 이런 천국을 바라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에서 해숙(가운데, 김혜자)은 영애(오른쪽, 이정은)와 함께 사정이 어려운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일수를 한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하는 법"이라며 냉철하게 일하는 해숙은, 협박하기 위해 깬 과일 값을 지불하려는 입체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사진 SLL
힘든 삶을 사는 이들을 상대로 사채업을 하는 해숙은 “천국이 있을지, 있다면 내가 갈 수 있을지” 걱정한다. 그러나 “나한테는 착한 사람”이라며 해숙 곁을 지키는 영애의 말대로 천국에 갈 자격을 얻게 된다. 정덕현 평론가는 “작가진은 ‘눈이 부시게’ 때부터 돌봄 노동에 관심을 둬 왔다”며 “이 작품에서도 ‘지겨워 죽겠다’면서 즐겁게 낙준과 영애를 돌보는 해숙의 모습이 현실적인 듯 유쾌하게 그려진다”고 분석했다.
2화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부의 천국 생활이 펼쳐진다. 이승에선 강단 있는 성격의 해숙이었지만, 천국에서 여유를 찾자 본래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드러난다. 배우 김혜자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부분. 병상에만 누워있던 낙준은 천국 공무원으로 일하며 발맞춰 걷고 싶었던 해숙과 노을길 산책을 즐긴다. 손석구는 겉으로 보이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해숙만을 바라보는 낙준의 천진난만함을 능청스러운 연기로 소화해냈다.
드라마 속 천국의 체계적인 모습도 볼거리. 이승에서의 삶이 끝난 후 저승으로 향할 땐 지하철·택시 등 익숙한 교통편을 선택할 수 있고, 천국에 도착하면 보안검색대와 상담 창구를 들러야 한다. 여러 번 다시 태어나는 주인공을 그린 안도 사쿠라(安藤咲良) 주연의 일본 드라마 ‘브러시 업 라이프’(2023)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도 나온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상대하는 천국의 공무원은 기계적이지만 친절한 말투로 사람들을 맞이해 웃음을 자아낸다.

김 감독이 그리는 저승의 풍경은 이승과 다르지 않다. 김 감독이 지난 18일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승에 있을 때 미처 못 한 일들을 익숙한 공간에서 할 수 있기 위함"이다. 이승에서와 달리 걸을 수 있고, 만성통증이 사라진 모습의 부부지만 천국지원센터 등이 있는 저승 도심의 모습은 이승과 유사하다. 사진 SLL

강아지들은 기대감에 가득찬 모습을 하고,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려왔다. 주인이 따로 없는 유기견들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와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해준다. 사진 SLL
마냥 아름다울 것 같은 천국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천국지원센터장(천호진)은 “여기서도 잘못하면 지옥에 갈 수 있다”며 “천국은 상(賞)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극적 반전을 통해 생의 찬란함을 전했던 ‘눈이 부시게’ 제작진이 함께한 만큼, 베일에 감춰진 천국의 이면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기대감을 높인다.
드라마는 빠른 전개 속도를 유지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천국에서의 나이 차이를 극복 중인 부부에게 솜이(한지민)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난관을 만난 이 부부가 ‘천국보다 아름다운’ 가치들을 어떻게 일깨워 줄지, 그 여정이 총 12부작으로 펼쳐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