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낮 12시 5분쯤 경남 하동에서 산불이 나자 산림당국은 긴장했다. 지난 3월 인근 산청에서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낸 초대형 산불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림당국은 하동에서 산불이 나자 산불 2단계를 발령하고 헬기 36대 등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으나 일몰 전 주불을 잡지 못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밤에도 진화작업에 나서 이날 오후 11시 기준 진화율 99%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야간에 진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설치된 임도(林道) 덕분이었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임도가 없었으면 야간에 불을 끄기 어려웠고, 자칫 대형 산불로 번졌을 가능성이 컸다”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 마을 일대가 산불 피해로 인해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노물리 해안 마을은 지난 22일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25일 강풍을 타고 확산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뉴스1
반면 지난 3월 경남 산청 지리산 산불 현장에서는 험준한 산세 속에서 진입로(임도)가 없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울산 울주군에서 발생한 산불 2건은 임도 여부가 신속한 진화 여부를 갈랐다. 울주군 화장산은 폭 3m짜리 임도가 있어 밤에도 불을 끌 수 있었다. 반면 임도가 없는 울주군 대운산은 128시간 만에 불을 잡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산불이 대형화하는 요인으로는 숲에 잔뜩 쌓인 낙엽 등과 함께 부족한 임도도 꼽힌다. 임도는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 숲속 찻길을 말한다. 임도가 없는 산은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어 불을 신속하게 끌 수 없다. 특히 야간 진화작업을 위해서는 임도가 필수라고 한다. 헬기는 안전 문제 때문에 야간에 뜰 수 없기 때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가 있으면 진화 효율이 5배 이상 높아진다”라며 “임도에서 1m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이 1.55㎡씩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고 전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 소속 대원들이 지난달 21일 경남 산청군 산불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산림청에 따르면 1968년부터 국내에 조성한 임도(2024년 기준)는 2만6789㎞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은 임도가 산림 1ha당 54m, 오스트레일리아 50.5m, 일본 23.5m지만 한국은 4.01m다. 특히 진화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취수장을 겸비한 ‘산불진화임도’는 856㎞에 불과하다. 산불진화임도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설됐다. 종전까지 임도를 주로 산림경영·숲가꾸기 용으로 개설했다. 하지만 산불이 대형화하면서 산불진화임도 필요성이 제기됐다. 산불진화임도는 종전 임도(폭3m)보다 2m 넓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에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의성의 산불 임도는 710m로 조사됐다. 안동과 경남 산청에는 산불 임도가 없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20년 ‘산림 특성을 고려한 임도 밀도 목표랑 산정 연구’에서 “한국의 산 1ha당 최소 6.8m의 임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1만6000㎞를 추가로 개설해야 한다.
임도가 신속하게 개설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예산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당 임도 공사비는 3억3500만원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에 도로를 개설하다 보니 예산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임도 지원에 정부가 예산지원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올해 1574억원을 들여 산불진화임도 500㎞를 개설할 예정이다.
경북 5개 시·군 산불 주불이 잡힌 지난달 28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 일대 야산이 산불로 인해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다. 뉴시스
사유림은 임도 개설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총사업비의 70%를 중앙정부가, 20%는 지방정부가, 10%는 산림소유자가 각각 부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산주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북과 경남의 사유림은 각각 89%와 91%에 이른다.
이와 관련, 남성현 전 산림청장은 “자치단체 사무인 임도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환원하고, 사유림에 임도를 시설하면 산림소유자가 부담하는 10%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도 시설 사업은 2020년부터 지방분권 등을 이유로 국가 사무에서 자치단체 사무로 이관됐다. 반면 임도와 유사한 산사태 예방사업은 사유림이라도 국가안보와 사회재난안전 차원에서 중앙정부가 70%, 지방정부가 30%를 각각 부담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 한 과수원 사과나무가 불에 타거나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환경단체 반발도 문제다. 환경단체는 임도 확충이 산사태 위험을 키운다며 반대해 왔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11월에도 매년 범정부적으로 시행하는 국가안전대전환 결과를 토대로 전국 725개 임도 유역 아래에 있는 1925가구가 산사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무분별하게 건설한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11월 당시 윤미향(무소속) 국회의원은 국회 예산심사에서 산림청의 임도 신설 사업에 동의할 수 없다며 환경단체의 요구대로 관련 예산의 감액을 주장하기도 했다.
7일 오후 경남 하동군 옥종면 옥천관에 마련된 하동 산불 이재민 대피소에서 이재민이 텐트(임시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행정 당국은 옥천관 대피소 텐트를 이날 오후 7시 53분부터 배정했다. 연합뉴스
산불 피해 지역 구호와 복구를 위한 보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등에 발생한 대형산불로 많은 주민이 피해를 봤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홍수 등 자연 재난으로 파손된 주택복구비는 최대 1억2000만원을 지원한다. 반면 산불과 같은 사회재난으로 인한 주택 복구비는 최대 3600만원을 준다. 버섯·산나물 등을 키우다 산불 피해를 본 임업인도 산불을 사회 재난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한다. 남성현 전 산림청장은 “이번 기회에 '대형산불로 인한 임업인의 피해 보상 지원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