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대구 북구 팔달동 팔달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 소형 텐트가 빼곡히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김재정(71·북구 조야동)씨는 “어제(28일) 낮에 집에 있는데 갑자기 가까운 산에서 연기가 엄청나게 많이 났다. 산불이 금방 꺼질 줄 알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해 몸만 빠져나왔다”며 “밤새 바깥에서 바람이 강하게 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럴 때마다 집이 불에 타버릴 것 같은 근심에 잠을 설쳤다”고 전했다.
산불 피해 몸만 빠져나온 주민들
앞서 대구시는 산불이 발생하자 노곡동·조야동·서변동 등 지역 주민 3514세대 6500여 명에게 대피를 안내해 인근 초·중학교에 마련한 7개 대피소에 661명을 수용했다. 나머지 주민은 친·인척 집으로 대피했다.

대구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9일 대구 북구 팔달초등학교에 설치된 대피소에서 주민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 현장과 가까운 대구 북구 노곡동은 아침 일찍부터 주민들이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쉴 새 없이 산불 진화 헬기가 날아다니고, 헬기가 만들어내는 굉음도 끊이지 않았다. 전날에 마을을 뒤덮었던 연기는 많이 걷혔지만, 여전히 탄내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 마을에 사는 김순희(87)씨는 “전날 대구 달서구에 있는 친척 집으로 대피했다가 해가 뜨자마자 마을로 돌아와 집이 무사한지 확인했다”며 “다행히 산불이 이쪽으로는 내려오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아직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산림당국 방어선 치고 확산 막아
대구소방안전본부는 산불이 난 노곡동을 비롯해 관음동·조야동·서변동 등 6개 방면에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다. 산불이 민가로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샘 작전을 펼친 데 이어 오전에도 진화 작업을 이어가며 산불 확산 저지에 총력을 쏟고 있다.
봉사자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문유순(61) 관문동 새마을부녀회장은 자신의 거주지 역시 산불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산불 가까이에 있는 주민들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문 회장은 “주민들이 최대한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마을을 돌며 대피를 유도하는 한편 대피소에 텐트 설치 작업을 도왔다”고 말했다.

대구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9일 대구 북구 산불 현장의 산림이 잿더미가 된 가운데 헬기가 물을 투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올해 봄철 들어 대구·경북 지역에서 빈발하고 있는 산불 탓에 지역민들은 ‘산불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일주일간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으로 삽시간에 번져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남긴 데 이어 대구와 경북 지역에는 건조한 날씨 속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TK 주민들은 ‘산불 노이로제’

지난 28일 오후 2시 1분께 대구 북구 노곡동 함지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야간에도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한 달간 발생한 산불들은 대부분 초기에 진화됐지만 강한 바람을 타고 불길이 언제든 번질 수 있어 인근 주민들은 산불 관련 재난 문자메시지가 올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실정이다.
이번에 발생한 대구 산불과 2.5㎞ 거리에 사는 이지윤(39·북구 매천동) 씨는 “최근 안동에 사는 친척이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겪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대구에서도 헬기 수십 대가 동원되는 큰불이 나 ‘산불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언제 어디서 산불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