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앞두고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 행사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나의 오랜 동지"라 불렀다. 푸틴 대통령 역시 시 주석을 "친애하는 동지"라 화답했다. 두 정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 행보를 의식한 듯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국가를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국 국민을 위해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8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환영의식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렘린궁 사이트 캡처
푸틴 대통령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이뤄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 친구들과 함께 역사적 진실을 굳건히 지키고, 신나치주의와 군국주의의 징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내일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성대한 열병식에 중국 의장대도 참여할 것”이라며 “외국군 병력 중 가장 큰 규모”라며 양국 군사 교류를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리 두 나라의 관계는 기회주의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이른바 ‘역(逆) 키신저주의’를 우려하는 시 주석을 배려한 발언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중·러 양국 정상은 이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맞서 강력한 연대를 과시했다. 지난 2013년 국가주석 취임 후 11번째 러시아를 방문한 시 주석은 “올바른 2차 세계대전 역사관을 공유하고, 유엔의 권위와 지위를 수호하며, 중국·러시아 및 여러 개발도상국의 권익을 옹호하자.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8일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환영의식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회담에 앞서 두 정상은 크렘린궁의 세인트조지홀에 깔린 레드카펫을 따라 홀 중앙에 세워진 대형 양국 국기 사이에서 악수하며 우의를 과시했다.
시 주석은 전날 도착 성명에서도 “중·러는 패권주의와 강권정치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정책을 비난했다. 러시아 역시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6일 “유럽연합이 동방으로부터 위협을 구실로 마치 제3 제국(나치독일)처럼 재무장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며 “(중·러 정상회담이) 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다시 쓰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강력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양국 정상은 ‘신시대 전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강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세계의 전략적 안정 수호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러시아와의 밀착을 과시하며 미국에 맞서는 다자 협력 체제구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쑨좡즈(孫壯志) 중국사회과학원 러시아 연구소장은 “이번 회담으로 에너지 협력 등 전통적 분야 외에도 디지털 경제, 국경 간 전자상거래, 바이오 의약 등 신흥 분야에서 협력 범위를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크렘린 관계자는 가격 문제로 그동안 진전이 없었던 서시베리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 2’ 건설에서 새로운 합의를 기대한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한편, 지난해 5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 없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는 베이징 공동성명을 발표했던 양국 정상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논의할지 주목된다. 앞서 2023년 3월 모스크바 공동성명에는 “미국은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 우려에 실질적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명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