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도 주목된다.
미국 시카고 태생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은 제 267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택했다고 교황청이 8일(현지시간) 밝혔다. 바티칸에 따르면 그간 가톨릭계는 교황직을 두고 ‘초강대국 출신 배제’라는 오랜 암묵적 원칙을 지켜왔다. 미국까지 교황을 배출할 경우, 교회가 특정 국가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경계심에서다.
8일(현지시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인사하는 레오 14세 교황. AP=연합뉴스
그런데도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이런 금기를 깨고 교황에 올랐다. 이와 관련, 그가 미국 국적 외에 페루 시민권도 갖고 있으며, 20년 넘게 중남미에서 선교 활동을 해온 ‘국경 없는 인물’로 평가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또 어머니가 스페인계, 아버지가 프랑스·이탈리아계인 다문화적 배경속에서 성장한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도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뉴욕타임스는 “레오 14세는 미국인이지만, 미국 가톨릭 주류와는 거리를 둬 온 인물”이라며 “교황청은 그를 ‘가톨릭 글로벌리스트’로 본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바티칸의 긴장 관계 속에서 미국 교황의 탄생은 더욱 이례적이다.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공개 비판했으며, 트럼프는 프란치스코 선종 후 마치 자신이 교황인 듯한 합성 사진을 게시해 신성모독 논란까지 일으켰다.
교황처럼 합성한 트럼프 대통령 이미지. 사진 트루스 소셜 캡처
새 교황 레오 14세 역시 트럼프와 각을 세워왔다. 그는 지난 2월, 외국인 배척 발언을 한 JD 밴스 부통령에게 “그는 틀렸다”며 “주님은 이웃 사랑에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고 X(옛 트위터)에서 일갈했다. CNN도 “과거 레오 14세는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다시 게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백악관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이날 미국 출신 새 교황의 선출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큰 영광”이라며 “만남을 고대한다”고 축하 메시지를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