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인문학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인공지능(AI)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6/09/72493efd-7e96-480f-ab53-742f483f9a26.jpg)
지난 3월 인문학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인공지능(AI)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새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방점은 인공지능(AI)에 찍혔다. AI 기술 발전이 '특이점'을 향해 치솟고 있는 마당이니 국가 생존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는 구호 아래 ‘AI 3대 강국’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정부 출범 후 가장 먼저 발표된 대통령실 조직에 ‘AI미래기획수석’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 아래로 ‘국가AI정책’ ‘과학기술연구’ ‘인구정책’ ‘기후환경에너지’ 등 4개 비서관실이 꾸려졌다. 수석이 ‘국가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가 돼 범국가적 AI 전략을 수립ㆍ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도다. 민주당 내에서 ‘AI 차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직제 구조만 보면 지난 정부에서 과학기술 수석 아래 ‘연구개발혁신’ ‘인공지능ㆍ디지털’ ‘첨단바이오’ ‘기후환경’ 4개 비서관실로 운영된 것과 유사하지만, 처음부터 대통령실이 AI를 필두로 한 과학기술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되겠다는 게 큰 차별점이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 있었던 과학기술 부총리 부활이 이번 21대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자율제조 월드쇼를 찾은 관람객들이 산업용 협동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박람회는 스마트 제조솔루션과 인공지능, 머신러닝, 자율생산 로봇시스템 등 , 디지털 트윈, 모델링 등 자율생산 시스템 최신 트렌드를 함께 공유하고 기술을 선보이기위해 열렸다. [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6/09/a99e8e10-fee7-4aed-9181-4b49b2f2ef7a.jpg)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자율제조 월드쇼를 찾은 관람객들이 산업용 협동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박람회는 스마트 제조솔루션과 인공지능, 머신러닝, 자율생산 로봇시스템 등 , 디지털 트윈, 모델링 등 자율생산 시스템 최신 트렌드를 함께 공유하고 기술을 선보이기위해 열렸다. [뉴스1]
'AI 차르'가 이끄는 새 정부 과학기술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AI에 대한 전폭적 투자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인력과 예산을 가진 한국에서 오픈AI처럼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AI 강국을 따라잡기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다. 대신 정부는 산업ㆍ제조를 위한 응용 AI 육성에 주력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한편으론 중국 딥시크의 사례에서 보듯 오픈소스 공개와 GPU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제는 LLM 개발이 쉬워진 만큼 우리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소버린 AI'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응용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LG와 네이버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LLM을 개발해오고 있는 점도 소버린 AI 구축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혼돈스런 정국 탓에 서둘러 만든 공약이라면 지금이라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독일이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추고 탈원전한 2023년 4월,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원자력 괴물 조형물.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6/09/6d03ad49-46e0-4136-a827-fe60bf4ceccc.jpg)
독일이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추고 탈원전한 2023년 4월,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원자력 괴물 조형물. [연합뉴스]
독일의 탈원전 부작용 참고해야
AI 3대 강국과 맞물려 챙겨야 할 게 에너지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등 서비스 운영에는 막대한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픈AI만 해도 원자력 발전소 5개 규모에 해당하는 5GW급의 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상이 필요하다고 미국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남 해안 지역에 풍력과 태양광 발전 단지를 대규모 조성하고, 여기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기후 위기가 절박하긴 하지만, 풍력ㆍ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전기요금이 현재보다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계통연결, 비상시를 위한 LNG 발전 등 이중ㆍ삼중의 시설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탈원전 끝에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독일이 반면교사다.
기후도 경제도 다 고민이라면 재생에너지만 쓰겠다는 ‘RE 100’보다는 뭐든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 된다는 ‘CF 100’이 더 현실적이다. 미국은 물론 영국 등 서구국가들도 최근 신규 원전 건설 등 CF 100의 흐름으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3년부터 미국보다 비싸졌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릴 경우 AI대 강국 공약 실현이 어려워질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시작하는 이재명 정부의 5년은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지난 3년처럼 이념과 갈등으로 퇴보할 것인가, 4만 달러를 넘어 5만 달러 시대를 열 것인가. 실용적 시장주의를 선언한 새 정부의 실천을 기다린다.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소버린 AI
‘주권’(sovereign)이란 단어가 의미하듯, 특정 국가가 외부의 영향 없이 독립적으로 개발ㆍ운영ㆍ통제하고, 해당 국가의 제도와 문화ㆍ역사ㆍ가치관 등을 이해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의미한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소버린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CF100(Carbon-Free 100%)
기업이나 국가가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다.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탄소 중립을 추진하는 RE100과 유사하지만, CF100에는 원자력 등 무탄소 에너지원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