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소주전쟁'의 표종록 이사(유해진)는 자신의 모든 것인 소주 회사를 외국 자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진 쇼박스
배우 유해진(55)이 영화 '소주전쟁'(지난달 30일 개봉)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다. 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화의 초반 흥행세가 저조하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유해진과 이제훈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개봉 3주차에 접어든 9일 현재, 관객수가 25만명에 불과하다.
그는 "오락 영화들에 밀리고 있지만, '소주전쟁'처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도 필요하다"며 "입소문으로 뒷심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무대 인사 다녀보니 IMF 외환위기를 겪거나 알고 있는 관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영화는 IMF 위기 당시 자금난에 휘청이던 국보 소주와 이를 헐값에 사서 비싸게 되팔려는 글로벌투자사 솔퀸 간의 싸움을 그린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인만큼 누구나 다 아는 결말이다.

영화 '소주전쟁'에서 자신이 몸담은 소주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표종록 이사를 연기한 유해진. 사진 쇼박스
이에 대해 유해진은 "누구의 가치관이 더 좋거나 옳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면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 그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정이 뒷전인 건 안타깝지만 회사의 많은 사람들을 지키려는 종록의 목표는 훌륭하다"면서도 "여기에 인범의 건전한 경제 관념이 더해지면 좋은 발란스를 이룰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화의 배경인 IMF 시절을 떠올리며 "극단 생활하면서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IMF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면서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홍릉에서 대학로까지 걸어 다니고, 소보로 빵 하나로 버텼다"고 털어놓았다.
유해진은 또 "가정은 뒷전이고 일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던 아버지들을 생각하며 종록을 연기했다"면서 "한번도 샐러리맨 생활을 한 적 없지만, 영화를 통해 간접 체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주전쟁'을 인터미션(휴식 시간) 같은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본 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 나마 멈춰 서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뜻이다.

영화 '소주전쟁'의 표종록 이사(유해진)는 자신의 모든 것인 소주 회사를 외국 자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진 쇼박스
30년 가까이 풍성하고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유해진은 자신이 해온 모든 작품에 감사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짜증 나거나 섭섭했던 작품, '쉬느니 이거라도 하자'며 택한 작품도 있지만, 돌아보니 더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작품들이었다"면서 "그래서 '소수의견'(2015)처럼 흥행이 안돼도 의미만 갖고 선택하기도 한다. 입맛에 맞는 것만 했으면 검사('야당')나 대기업 간부('소주전쟁', '베테랑') 캐릭터는 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무사'(2001)를 꼽았다. 양아치, 건달 역할만 맡아 연기에 회의가 들 때 김성수 감독의 제안으로 출연하게 된 영화다. "모래와 함께 욕을 엄청 먹으며 고생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장을 겪으며 많은 걸 배웠고, 감독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됐죠. 이후 카메라 앞에 서는 데 자신이 붙었습니다. '무사'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겁니다."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묻자, 그는 '삶의 균형'과 '행복'이라고 답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를 촬영 중이며, '암살자들'(허진호 감독)에도 캐스팅 된 그는 "작품에 출연 못하는 배우들이 허다한데, 계속 작품 제의 받으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산다는 점에서 축복 받았다"면서 "맛난 거 먹을 때, 돈 걱정 하지 않고 후배들 밥 사줄 때 행복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인기 배우가 된 지 오래 됐잖아' 하실 수 있지만, 지금도 그런 행복감을 자주 느낀다"며 "지금까지 잘 버텨준 내 자신이 대견하고, 현재 삶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