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갈 돈 이렇게 쓴다…집 근처서 휴가 보내는 MZ 사연

스테이케이션을 즐기는 MZ세대. 챗GPT 이미지생성

스테이케이션을 즐기는 MZ세대. 챗GPT 이미지생성

 
지난해 취업한 김모(24)씨는 지난주 입사한 뒤 처음으로 맞는 휴가 대부분을 서울 관악구 집 근처 카페를 돌며 보냈다. 김씨는 “원래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월급은 낮고 물가도 비싸 차라리 그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집에서 쉬면서 100만원 어치 주식도 사고, 카페에서 가상화폐 관련 책도 읽으면서 휴가를 보냈다”고 했다.

최근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휴가를 집과 가까운 곳에서 보내는 이른바 ‘스테이케이션(머무른다는 뜻의 Stay와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의 합성어)’을 즐기는 MZ(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 통칭)세대가 늘고 있다. 비싼 여행비용을 아끼고, 한 곳에 머무르며 자기계발 등을 통해 휴가 시간을 알차게 쓰려는 움직임인 셈이다.

해외여행을 취소하고 국내 여행이나 근처 쇼핑몰 등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한국관광데이터랩 ‘관광지 검색순위’에 따르면 검색량이 많은 100개의 상위 검색어 가운데 1위부터 6위까지가 쇼핑몰과 백화점이었고, 백화점 31곳, 쇼핑몰 29곳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자연경관과 시장이 각각 6곳, 도시공원·전시시설·호텔이 4곳으로 뒤를 이었고, 역사유적지나 종교성지 등은 2건에 불과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매년 휴가철마다 가족들과 여행을 다닌 석모(40)씨도 이 중 하나다. 강남에서 자영업을 하는 석씨는 “원래 국내든 해외든 매년 여행을 갔었는데, 올해는 가게 사정도 좋지 않고, 물가도 너무 비싸 포기했다”며 “방학을 기다리던 아들이 크게 실망해서 복합쇼핑몰에 데려가 선물을 사주기로 했다”고 했다. 이어 “여행비용을 아낀 김에 근교로 나가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나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여행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욜로(You Only Live Once·현재의 행복을 위해 과감히 지출하는 행태)’ 대신 ‘저(低)소비’가 휴가철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건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관광데이터랩 관광소비 추이를 보면 지난해 5월 3조 5600억원에 달했던 관광 총소비는 지난 4월 기준 3조 1700억원으로, 1년간 약 11%가량 감소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전문가들은 불경기인 만큼 소비 여력이 감소하면서 여행을 피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이를 수요 감소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여행을 가게 되면 숙박이나 항공편, 식비까지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고, 경기가 안 좋을수록 관광 등에 관해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MZ세대가 집이나 그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는 건 오히려 ‘집에서 쉰다’라는 말뜻 그대로 실속을 차리면서 충분한 휴식을 얻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여행은 소비 측면에서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소비이며, 이런 현상을 단순히 여행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고 분석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란수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경기가 안 좋을수록 취약계층이 가장 빨리 소비를 줄이고, 이는 관광이나 여행 등 지출을 쉽게 줄일 수 있는 부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소비가 어려운 계층이 관광이나 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얻을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 “여행의 감소는 인구 감소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의 경제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근로자 휴가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공약한 만큼 관광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을 통해 여행을 활성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