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낮 12시 43분쯤 대전동부경찰서 용전지구대에 한 남성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남성은 “여자친구가 어제 아침부터 금융감독원, 경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계속 통화하는 데 오후에 모텔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대전동부경찰서 용전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달 2일 "친구가 보이스피싱 범죄를 당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40분간의 설득 끝에 피해를 예방했다. [사진 대전경찰청]
신고를 접수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과 박영권 경위 등은 이 남성과 함께 모텔로 출동했다. 모텔에 있던 A씨(20대)는 경찰의 출동에 당황하며 “(보이스피싱이) 아니에요. 아니에요”라며 손을 내저었다. 경찰관들이 A씨의 동의를 얻은 후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계속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경찰이 휴대전화 사용 중지를 요청하자 거절하고 “보이스 피싱이 의심된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요청해도 “아니에요.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피해 여성, "보이스 피싱 아니다"며 확인 거부
방안 테이블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지시로 추정되는 메모를 발견한 경찰관은 “경찰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느냐”고 설득했지만 A씨는 완강하게 거절하며 휴대전화만 쳐다봤다. A씨는 오히려 “무슨 권한으로 그러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휴대전화에 보이스피싱 악성 앱(APP)이 깔렸을 것으로 추정한 경찰은 A씨에게 휴대전화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사이 경찰은 A씨가 범죄조직의 지시를 받고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 경위 일행의 설득이 20분이 지났을 때 대전동부경찰서 피싱전담수사팀이 현장에 도착했다. 전담경찰관이 “보이스피싱이다. 조회하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악성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서 112에 신고해도 범죄집단으로 연결이 된다”고 설득하자 겨우 의심을 풀은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휴대전화를 넘겨받은 경찰이 ‘악성앱 탐지 어플’을 설치한 뒤 검색하자 3개의 악성 프로그램이 설치된 게 확인됐다.
대전동부경찰서 용전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달 2일 "친구가 보이스피싱 범죄를 당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40분간의 설득 끝에 피해를 예방했다. [사진 대전경찰청]
조사 결과 A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꼬임에 넘어가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한 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앱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득 30분이 지나자 A씨는 “(범죄조직이) 여의도로 오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가면 OOO 과장이 만나준다고 했다”며 통화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대한 의심은 거두지 않았다.
설득 40분 만에 피해자 속았다는 사실 깨달아
보이스피싱 전담수사팀은 “(통화를) 몇 시간 했을 것이다. 검사들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에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라고 A씨를 다시 설득했다. A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받은 서류를 검찰로 보내 확인한 결과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검찰에서는 영장, 공무원증, 서류 등을 파일로 보내거나 금융거래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회신을 확인한 A씨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지 40분 만의 일이었다. 다행히 A씨는 금전적 피해는 입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에도 같은 모텔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피해를 본 시민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며칠간 모텔에 머물며 수천만원을 보낸 뒤 피해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대전동부경찰서 용전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달 2일 "친구가 보이스피싱 범죄를 당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40분간의 설득 끝에 피해를 예방했다. [사진 대전경찰청]
경찰 관계자는 “범죄 조직이 모텔 등에 피해자를 보낸 뒤 혼자 있게 만들고 지속해서 세뇌하는 수법으로 범행이 진화한다”며 “피해자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해서 구속한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과 검찰, 공공기관은 돈을 요구하거나 수사서류, 영장 등을 파일로 전송하지 않는다”며 “보이스피싱 범죄가 의심되는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가까운 경찰관서로 가서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