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10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구에서 수출을 앞둔 중국산 전기차들이 선적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젠 공장 안 짓겠다”…지리 회장 선언이 의미하는 것
중국 자동차 산업이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업계는 위기감으로 들끓고 있다. 전기차 열풍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차 위상이 높아졌지만 실상은 ‘치킨게임’과 같은 내부 소모전에 산업 전반이 위태롭다.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第一财经)에 따르면 7일 충칭(重慶)에서 열린 ‘2025 중국자동차충칭포럼’에서 지리(吉利)자동차의 리수푸(李書福) 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은 이미 포화 상태”라며 “지리는 더 이상 공장을 짓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글로벌 생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원 통합과 실용적 협력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자동차의 공급 과잉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2025중국자동차충칭포럼'에 참가해 연설 중인 지리자동차 리수푸회장. 바이두캡쳐
가동률은 50% 밑돌아도…여전히 짓는 공장들
중국 자동차 산업의 고질적 문제는 ‘양적 팽창’에 치우친 산업 구조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대형 국유기업 중심 체계에서 민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이에 따른 과잉 투자가 이어졌다. 지난 몇년간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부진 때문에 지방 재정과 은행 대출, 민간 자본 등 갈 곳을 잃은 돈은 모두 자동차 산업에 쏠렸다.
2024년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3100만대, 그 중 전기차가 1000만대이다. 그런데 중국의 연간 자동차 생산능력은 7000만대에 달한다. 이 중 상위 20개의 주요 기업에서 전체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2023년 상하이GM의 가동률은 22%, 둥펑닛산 우한 공장은 연간 30만대 규모의 설비를 갖췄지만 실제 가동률은 10%에도 못 미친다.
영업이익률도 곤두박질쳤다. 2014년 8.99%였던 업계 평균 영업 이익률은 올해 1분기 기준 3.5%까지 하락해 전체 제조업 평균(5.8%)을 크게 밑돈다. 생산은 멈췄지만 각 지방 정부는 여전히 공장 신·증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장성자동차(長城汽車)의 웨이젠쥔(魏建軍) 회장은 “자동차판헝다(恒大)가 곧 터진다”고 경고했다. 특정 기업(BYD)을 겨냥한 듯한 발언에 업계는 술렁였다. 2021년 440조원 부채를 안고 파산한 헝다 사태가 자동차 산업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중국 장시성 난창의 장링 신에너지차 생산라인에서 완성된 차량들이 최종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다. 신경진 기자
세계 시장으로 눈 돌린 중국차…신흥시장 ‘공습’
내수 과잉을 해외로 해소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본격화됐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수출은 641만 대로 2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 중 전기차가 201만 대, 내연기관 차량이 440만 대였다. 전기차 세계 1위 BYD는 최근 일부 모델 가격을 최대 34%까지 인하하며 수출 확대에 나섰다. 생산 과잉으로 인한 ‘저가 공세’가 글로벌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중국국가통계국의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최대 수출국은 러시아(115만 8000대)였다. 일본과 유럽, 미국 자동차가 철수한 틈을 타 하버, 지리, 창안 등 중국 브랜드가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중국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당분간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 지위는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업계 자동차계의 '테무' '알리' 우려에 긴장
한국 자동차 업계도 중국발 ‘자동차 테무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는 반덤핑·보조금 제재로 방어에 나섰지만 제재가 약한 신흥시장에서는 중국의 저가 공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실정도 녹록치 않다. 2024년 미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1590만대, 유럽은 1284만대로 모두 코로나 이전보다 저조하다. 트럼프발 관세 우려 외에도 우리 자동차 기업이 직면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그리 녹록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