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처럼 새 정부가 미·중 사이 딜레마 속에서 첫발을 내딛은 가운데 여론이 바라는 ‘이재명표 실용외교’의 방향은 ‘안미경중’도, ‘안미경미’도 아닌 ‘안미경미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은 더 단단하게 만들고, 경제적으로는 미·중 모두와 협력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일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손열)의 공동 기획 조사(6월 4~5일, 전국 성인남녀 1509명 웹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 ±2.5%p, EAI가 한국리서치에 의뢰)에 따르면 현재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위협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64.9%가 “미·중 간 전략 경쟁과 갈등”이라고 답했다.(복수응답, 2순위까지 합계) “보호무역 확산 및 첨단기술 경쟁”이라는 응답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59.8%)

차준홍 기자
이는 이번 조사에서 새 정부의 최우선 외교 과제를 묻는 질문에 “경제외교 강화”가 49.8%로 가장 많은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에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유발한 것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면, 이제는 미·중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불만이 가중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EAI는 분석했다.
실제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자는 지난해 12.7%에서 올해 17.1%로 늘었는데, 이 중 가장 많은 79.9%가 “미국이 무역, 관세 등에서 다른 나라에 강압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해당 응답은 지난해에는 34.4%에 불과했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와 철강 등에 일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주한미군 감축 검토 등의 보도가 나온 게 여론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군사적으로 위협이 된다는 응답도 지난해 8.7%에서 올해 15.4%로 크게 늘었다. 파나마운하·그린란드 편입을 위해 군도 동원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 등에서 드러난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역시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차준홍 기자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도 66.5%에서 75.3%로 늘었다. 이유를 묻자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안정에 불가결”(74.9%)이 가장 많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필요가 있어서”(49.9%)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일반 국민도 한·미 동맹의 범위가 한반도를 넘어서야 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이 북핵 대응을 넘어 대중 견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를 묻자 한·미 관계를 꼽은 응답자가 90.7%로 압도적 1위였다. 2위인 한·중 관계(43.2%)의 두 배를 웃돌았다.
그런데 ‘경제관계가 중요한 국가’를 묻자 미국이라는 응답자가 93.3%, 중국을 꼽은 응답자가 82.7%였다. 여전히 미국이 1위이긴 하지만, 중국과의 차이는 10.6%p에 불과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결국 경제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 모두와의 협력이 필수라는 인식이 드러난 셈이다. 이와 관련, 대미 외교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할 이슈 중 “경제 및 첨단 기술 협력”을 택한 응답자는 23.9%였다. 이는 20대 대선 직전인 지난 2021년 실시한 여론조사(2021년 8월 26일~9월 11일, 전국 성인남녀 1012명 대면면접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 ±3.1%p)에서 19.1%가 같은 답을 한 것에 비해 4.8%p 상승한 것이다.
대중 외교에서 우선 고려할 이슈로는 가장 많은 33.9%가 “경제 교류 확대 및 첨단 기술 협력”을 택해 2021년(20.8%)보다 13.1%p 상승했다. 트럼프가 사실상 중국과의 경제적 단절을 요구하는 가운데 중국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는 인식이 더 강해진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