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외동딸, 정치 데뷔?…33세 시밍쩌 외빈만찬 첫 배석

중국의 권부인 중난하이 전경. (『중난하이』, 신화출판사, 1983)

중국의 권부인 중난하이 전경. (『중난하이』, 신화출판사, 1983)

지난 4일과 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관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알렉산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판첸 라마 11세를 잇따라 접견했다. 접견이 이뤄진 중난하이 순일재(純一齋)의 모습이 중국중앙방송(CC-TV)의 메인 뉴스와 관영 벨라루스통신(BelTA)을 통해 공개되면서 시 주석의 관저정치가 펼쳐진 중난하이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알렉산더 루카센코(왼쪽) 벨라루스 대통령과 중난하이 순일재에서 회견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지난 4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알렉산더 루카센코(왼쪽) 벨라루스 대통령과 중난하이 순일재에서 회견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또한 시 주석의 외동딸이 배석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향후 활동의 보폭을 넓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9일 니콜라이 스노프코프 벨라루스 제1부총리는 현지 공영방송에 출연해 지난 4일 중난하이 만찬에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 외에도 딸 시밍쩌(習明澤·33)가 배석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비공개 발언 중 루카센코 대통령에게 “내 친구여, 당신과 나는 특별한 관계다. 이에 가족만찬을 마련했다”라며 “내 딸이 이런 방식으로 외국 지도자와 만찬을 함께 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고 벨라루스통신사 중문판이 보도했다. 1992년 생인 시밍쩌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로 논란이 된 미국 하버드 대학을 2010년 5월부터 2014년까지 가명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6일 베이징 중난하이 순일재에서 중국이 판첸 라마 11세로 대우하는 어얼더니 췌지제부(額爾德尼 確吉傑布, 왼쪽 세번째)를 시진핑(오른쪽 네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접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6일 베이징 중난하이 순일재에서 중국이 판첸 라마 11세로 대우하는 어얼더니 췌지제부(額爾德尼 確吉傑布, 왼쪽 세번째)를 시진핑(오른쪽 네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접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게다가 시 주석의 중난하이 회견은 보름간의 잠적 이후의 첫 공개행보였다. 시 주석은 지난 5월 19일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가 두 차례 하방됐던 허난성 뤄양(洛陽)을 시찰한 뒤 보름동안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4일 1994년 이래 31년째 권좌를 지키는 루카센코 대통령을 댜오위타이(釣魚台) 국빈관이나 인민대회당이 아닌 관저 중난하이에서 접견했다. 시 주석이 직접 중난하이 풍택원(豊澤園)의 순일재 앞에서 루카센코를 맞이하는 영상도 벨라루스 방송이 공개했다. 시 주석이 직접 “제 집무실이 바로 옆”이라는 발언도 방송을 탔다.

이어 6일에는 같은 순일재에서 중국이 판첸 라마 11세로 대우하는 어얼더니 췌지제부(額爾德尼 確吉傑布)를 접견하며 관저정치를 이어갔다. 루카센코 접견에 불참했던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은 물론 서열 4위의 왕후닝 전국정협 주석도 배석시켜 굳건한 권좌를 과시했다.

시 주석의 중난하이 외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11월 1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순일재에서 멀지 않은 인공호수 남하이(南海)의 영대(瀛台)에서 산책을 나누며 담소를 나눴다. 지난해 5월 16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같은 영대에서 맞아 차담회를 갖기도 했다.


중난하이. 구글맵 캡처

중난하이. 구글맵 캡처

시 주석의 관저와 집무실이 자리한 중난하이는 한국의 청와대, 미국의 백악관, 러시아 크렘린에 비유되는 중국 권력의 상징이다. 면적은 100만㎡, 축구장 140개의 넓이다. 140여개의 이상의 다양한 건물, 2000개 이상의 방이 포진한 중난하이는 마오쩌둥이 말년을 보내며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를 만난 수영장동(棟)을 경계로 북쪽은 국무원 구역, 남쪽은 당 중앙 구역으로 나뉜다.

이번 루카센코와 판첸 라마를 만난 순일재는 중난하이 남쪽 당 중앙 구역에 위치한다.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가 지은 풍택원에 속한다. 6대 황제 건륭제의 친필 편액이 걸린 풍택원은 황제가 직접 농사를 짓는 터를 뜻한다. 원내에 논과 양잠을 위한 뽕나무가 무성하다. 건물군 안에는 회의실로 쓰던 이년당(頤年堂), 황제의 서재로 마오쩌둥이 1949년 9월부터 17년간 거주했던 국향서옥(菊香書屋), 마오쩌둥이 주말에 댄스를 즐겼다는 춘우재(春耦齋), 정곡(静谷)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난하이 당 중앙 집무 구역. 구글맵 캡처

중난하이 당 중앙 집무 구역. 구글맵 캡처

 
창당 100주년을 앞둔 지난 2021년 6월 25일 시 주석은 정치국원들과 함께 풍택원의 국향서옥을 찾았다. 이년당에 전시한 마오의 유품을 보며 "풍택원은 당의 역사상 랜드마크"라고 말했다. 국향서옥 입구에는 자운헌(紫雲軒)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건국초 마오의 비서였던 왕허빈(王鶴濱)의 회고록 『자운헌의 주인』에 의하면 순일재는 당 중앙판공청 사무실로, 댄스홀로 바뀐 춘우재는 중앙군사위원회판공청으로 사용됐다.

중난하이의 서문과 가까운 회인당(懷仁堂)은 서태후가 침실로 사용한 전각이었다. 1959년 인민대회당이 완공되기 전까지 전국정치협상회의 등 주요 회의장소로 사용됐다. 1976년 10월에는 문혁 4인방 중 왕원훙(王洪文), 장춘차오(張春橋), 야오원위안(姚文元) 3명이 호출을 받고 회인당에서 체포됐다. 마오의 부인 장칭(江青)은 국무원 구역 끝자락의 201호관에서 체포됐다고 전해진다. 1989년 5월 천안문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 선포가 이뤄진 곳도 회인당이었다. 지금도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와 월례 정치국회의 장소로 이용된다.

해마다 1월 1일 신년사를 촬영하는 시 주석의 집무실은 풍택원 바로 옆 근정전(勤政殿)에 자리한다. 1700년대 강희제가 지어 집무실로 사용했다. 청조 멸망 후 북양군벌 위안스카이가 총통부 집무실을 이곳에 설치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는 제1차 중앙정부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의 사무실도 이곳에 자리했다. 당 총서기 판공실, 중앙서기처 사무실, 시진핑 당총서기·국가주석 집무실이 이곳에 있다.

중난하이의 정문은 베이징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안대가와 접한 신화문(新華門)이다. 건륭제가 신장(新疆) 출신 향비(香妃)를 위해 지은 보월루(寶月樓)를 위안스카이가 신화문으로 바꿨다. 문 동쪽으로 "싸워 지지 않는 마오쩌둥 사상 만세" 구호가 적혀있다.

중난하이에 가장 오래 살았던 신중국 정치인은 마오쩌둥이었다. 그는 1949년 건국전야 베이징 서쪽 향산의 쌍청별장(雙淸別墅·쌍청별서)에 머물며 중난하이 입주를 거부했다. 중난하이가 ‘황제의 정원’이었다며 “나는 황제가 되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개국 열흘 전에야 저우언라이, 예젠잉 등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입주를 허락했다. 이후 마오는 국향서옥과 수영장동에 머물렀지만 시 주석이 오바마와 푸틴을 만났던 영대는 이용을 거부했다. 황제의 휴식처였다는 이유였다.

참고서적: 이나가키 교시(稻垣淸), 『중난하이-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중추』, 이와나미서점, 2015; 중난하이화책편집위원회, 『중난하이』, 신화출판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