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황포가신(黃袍加身)과 조광윤(趙匡胤)

당나라가 멸망하고, 전쟁과 정변이 끊이지 않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이 혼란기도 마침내 수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술에 만취해 잠들었다가 어리둥절한 채로 송(宋)나라를 건국한 조광윤(趙匡胤. 927~976)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황포가신(黃袍加身). 바이두

황포가신(黃袍加身). 바이두

이번 사자성어는 황포가신(黃袍加身. 누를 황, 도포 포, 더할 가, 몸 신)이다. 앞 두 글자 ‘황포’는 ‘황색 곤룡포’다. ‘가신’은 ‘옷을 몸에 걸치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황포를 몸에 두르다, 즉 정변(政變)을 통해 황제로 등극하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탁월한 무장이던 조광윤은 외적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출병했다. 수도를 떠난 다음 날 새벽, 부하 장수들이 강제로 황포를 입혀주자 그는 숙취 상태에서 마지못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황포가신’은 이 일을 기록한 ‘송사(宋史)’에서 유래했다.

조광윤은 무인 집안에서 출생했다. 지혜로운 모친 두(杜)씨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문무를 겸비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건장한 체격에 창술, 봉술 등 무술 실력이 뛰어나 군주의 총애를 받는 젊은 장수였다. 스스로 권법을 창시할 정도로 상체 몸놀림이 민첩했고, 발로 공을 다루는 기량도 뛰어났다.

조광윤(趙匡胤). 바이두

조광윤(趙匡胤). 바이두

조광윤의 나이 27세 때, 그가 모시던 시영(柴榮)이 후주(後周)의 2대 황제로 즉위했다. 시영은 매우 탁월한 리더였다. 그러나 중국 통일을 목표로 동분서주하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37세에 사망한다.

조광윤의 송나라 개국은 엄밀하게 평가하면, ‘진교병변(陳橋兵變)’이란 군사정변을 거친 것이었다. 시영의 8살짜리 아들인 황제를 무력으로 위협하고 선양의 형식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조광윤은 이 과정에서 무력 충돌을 자제했고, 시영의 후손들을 적극 보호했다.


‘시씨의 후손은 죄가 있어도 벌을 주지 말라. 심지어 역모의 죄를 짓더라도 그냥 옥중에서 자결하게 해주고, 저잣거리에서 공개 처형하지 말라. 죄와 벌을 그의 친인척에게 연좌해서도 안 된다.’ 조광윤이 돌에 새겨 후계자들에게 전한 석각유훈(石刻遺訓) 가운데 첫 당부다. 요절한 보스 시영을 향한 그의 복잡한 마음을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33세에 송나라를 개국한 조광윤은 약 10년에 걸친 군사 활동 끝에 중국 북부를 거의 통일했다. 내부적으론 과거제도를 보강했다. 최종 시험에 직접 참관하는 등 관료 선발 과정의 부패 방지에도 힘썼다.

문치(文治)를 향한 그의 집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더라도, 사대부를 죽여서는 안 된다.’ ‘석각유훈’의 한 문장이다. 간결하지만,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송나라에서 문인들이 마음껏 저술하고 소신을 갖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초가 바로 이 한 문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조광윤의 일생에 모친이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모친 두씨는 고관의 아내였음에도 사치를 삼갔고 늘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안타깝게도 조광윤은 황제에 오른 이듬해에 모친과 사별했다.

송나라 문인들의 여가활동. 바이두

송나라 문인들의 여가활동. 바이두

모친을 잃은 34세에 조광윤은 큰 결단을 하나 내린다. 훗날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으로 알려지는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하루는 연회에서 진심을 담은 연설을 한 후, 개국 공신들의 병권을 한꺼번에 회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실로 전광석화와 같은 조치였다.

연회에 참석한 장수들은 그의 대안 제시에 모두 동의하고 병권을 순순히 내놓는다. 내용은 쿠데타 예방을 위한 긴장감 넘치는 권력투쟁이지만, 꽤 신선하고 설득력도 갖춘 형식이었기에 역사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조광윤은 49세에 갑자기 병에 걸렸다. 병에 걸리고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제위를 아들이 아닌 동생이 계승했기에 독살설 등 여러 의혹이 존재한다.

난세를 치세로 바꾼 송 태조(太祖) 조광윤의 삶 전체를 ‘경륜(經綸)’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요약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준비가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젊은 나이에 리더로 부상해도, 만약 들뜨지 않고 시대적 소명에 집중하면 탁월한 리더십 발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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