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의 부품 계열사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인공지능(AI) 가속기와 로봇 부품 사업에서 연이어 유의미한 수주를 따내고 있다. 스마트폰 등 기존 주력 사업의 성장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부품사들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신사업 전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20일 IT(정보기술)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마벨 테크놀로지에 ‘실리콘 커패시터’ 납품을 시작했다. 커패시터는 전자 부품에 전류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돕는 전기 부품이다. 실리콘 웨이퍼를 기반으로 만드는 실리콘 커패시터는 반도체 패키지 두께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고속·고전력 AI 칩과 호환성이 높아 차세대 제품으로 꼽힌다. 삼성전기는 올 1분기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마벨 측은 고성능 AI 가속기용 멀티다이 패키징 플랫폼에 실리콘 커패시터를 탑재돼 전력 소모량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향후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한 시장에서 커패시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생산능력 확대와 고객사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LG이노텍은 로봇용 카메라 모듈 시장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AI’와 카메라 모듈 공급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규어AI는 엔비디아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기업으로, 테슬라·보스턴다이내믹스 출신 인력들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양사의 협상이 마무리되면 내년 초부터 양산 공급이 시작되며, LG이노텍은 피규어AI의 첫 공식 카메라 모듈 공급사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LG이노텍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휴머노이드 부품 공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실제로 LG이노텍의 고객사 중 일부는 지난 CES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키노트 발표에 등장한 14개 로봇 기업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휴머노이드는 고성능 센싱을 위한 카메라 모듈 수요가 큰 만큼, 중장기적 매출 확대 여지가 크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고 있으며, LG이노텍은 애플 아이폰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한다. 대형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지만 최근 스마트폰 수요 둔화, 성장성 한계 등으로 기존 스마트폰·IT기기 의존에서 벗어나 산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야 하는 과제를 양사 모두 안고 있다.  

특히 AI 기기와 인프라가 늘어날수록 고성능·고효율 부품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만큼, 이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 1월 신사업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미래 산업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부품과 소재 기술이 기반이 돼야 한다”며 “핵심 기술을 보유한 삼성전기가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실리콘 커패시터, 전고체 전지, 전장(차량용 전자·전기장비)용 하이브리드 렌즈, 유리기판, 고체산화물 수전해전지(SOEC) 등 총 5개를 향후 신사업으로 꼽았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도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축적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모빌리티, 로봇 부품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내달 실적발표를 앞둔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최근 낮아지고 있다. 매출 90%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이는 두 기업의 영업이익이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전분기 대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