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 공군의 이란 핵 시설 공습 사실을 확인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격한 무력 충돌을 벌여온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적인 휴전에 합의했다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한 대목이다. 초대형 폭탄 벙커버스터 GBU-57을 실전에서 처음 사용하는 등 미군의 전격적 개입으로 급속도로 긴장이 고조되던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발표와 함께 12일 만에 봉합 국면으로 접어드는 흐름이다.
23일 전격적인 휴전 선언이 있기 직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180도 달랐다. 이란은 이날 오후 카타르와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에 단거리ㆍ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 21일 미 공군이 B-2 폭격기에서 투하한 벙커버스터 GBU-57 14발과 해군 잠수함에서 발사한 20여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포르도ㆍ나탄즈ㆍ이스파한 등 이란의 주요 핵 시설 3곳을 초토화한 데 대한 보복 공격이었다.
이란, 보복 사전 통보해 수위 조절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의 노골적 침략 행위에 대응한 것”이라면서도 “이란은 중동 역내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방점은 후자에 찍힌 것으로 해석됐다. 미국은 이란 미사일 14발 중 13발을 정확히 요격했고, 나머지 1발도 목표물을 벗어나 유의미한 타격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미 국방부는 피해 규모에 관한 중앙일보 질의에 “미국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24일(현지시간)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공중방어시스템에 의해 상공에서 요격된 뒤 연기 자국을 내고 있다. AP=연합뉴스
힘 빠진 이란, 장기전 원치 않은 듯
여기에 서방의 장기간 제제로 경제난이 극심해지는 등 내부 사정이 악화일로다. 미군이 이란 핵 시설을 정밀 타격한 ‘미드나잇 해머(한밤의 해머)’ 작전 수행 전 백악관에서는 ‘이란의 힘이 지금처럼 약해진 때가 없었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 “공격 통보해준 이란에 감사”
확전 여부의 키를 쥔 쪽은 ‘이란 핵무기 개발 저지’를 명분으로 선제 공습을 한 이스라엘 쪽이었다. 포르도 등 이란 핵 시설 3곳에 대한 미국의 전격적인 대규모 공습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집요한 설득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군 공습을 받은 이란 핵시설 3곳의 위성사진. 포르도에선 환기구로 추정되는 2곳에 구멍이 3개씩, 나탄즈엔 1개가 남아 있고, 이스파한의 건물은 무너진 상태다. AP·EPA=연합뉴스
“이란 핵시설 완파”…휴전 명분 제시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깜짝 휴전 선언’을 발표하며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을 영어 대문자를 써 ‘12일 전쟁’으로 명명한 것 역시 이스라엘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트럼프 성향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는 “트럼프가 택한 ‘12일 전쟁’이란 타이틀은 이스라엘이 적국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1967년의 ‘6일 전쟁’에 대한 명백한 암시”라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적인 휴전에 합의했다며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 이란의 12시간 동안 휴전에 이어 이스라엘의 12시간 동안 휴전과 함께 24시간 뒤 세계는 ‘12일 전쟁’의 공식적인 종식을 축하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진 트루스소셜 캡처
‘12일 전쟁론’ 이스라엘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전쟁 확대는 큰 부담이었을 공산이 크다. 그는 집권 1기 때 “우리는 중동(전쟁)에 7조 달러를 썼지만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하는 등 과거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더는 맡지 않겠다는 대선 공약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는데 약속과 달리 이스라엘ㆍ이란 전쟁에 개입하자 ‘마가(MAGA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자신의 코어 지지층에서 강한 반대가 이어지는 상황도 정치적 부담이 됐을 거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