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 10명 중 9명 "고교학점제, 정착은커녕 시행도 어려워"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고등학교 교사 대다수가 올해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도 자체의 시행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전국 고등학교 교사 10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조사는 고교학점제 시행 넉 달을 맞아 학교 현장의 실태를 진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교학점제가 실제로 학교에 얼마나 정착했는지를 묻는 항목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9%는 “여러 여건이 미비하지만 교사들의 희생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답했다. 또 31.9%는 “시행 자체가 어려워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의견은 전체 응답자의 86.8%에 달했다.

반면 “비교적 정착되고 있다”는 답변은 10.5%,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1.5%에 그쳤다.


과목 수 늘어나며 업무 부담 증가

응답 교사의 37.1%는 3개 이상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고, 4개 또는 5개 이상이라는 답변도 각각 5.9%, 1.7%를 차지했다. 담당 과목 수 증가로 인한 가장 큰 부담으로는 ▲생활기록부 기재 업무(72.2%) ▲수업 준비 및 행정업무(63.5%) ▲시험 출제 부담(43.8%) 등이 지적됐다.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이나 지역 온라인학교 운영에 대해서도 50.7%가 “정규 수업시간 내 운영이 어려워 실질적인 활용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이수제를 실질적으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미이수를 방지하기 위해 보충지도를 강제하는 방식에 대해 교사들은 ▲학생의 낮은 참여도(58.1%) ▲방과후 및 방학 중 지도에 따른 교사 과중(56.1%) ▲형식적 수행평가 운영(54.6%) 등을 우려했다.

출결 시스템·대입 제도도 문제 지적 

과목별로 변경된 출결 방식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56.1%에 달했다. 출결 처리 개선을 위해 ▲전자출결 시스템 도입(62.3%) ▲교과 담당과 담임 교사의 공동 수정 권한 부여(61.6%)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고교학점제와 연계된 2028학년도 대입 개편에 대해서도 교사들은 회의적이었다. 절대평가 방식의 성취평가제 확대에 대해 “고교 서열화 및 내신의 대입 영향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가 47.7%로, 찬성(20.5%)의 두 배 이상이었다. 국어·수학·탐구영역의 선택과목을 폐지한 통합형 수능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59.9%)이 찬성(28.4%)을 크게 웃돌았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교사에게는 과중한 부담을, 학생에게는 피해를 안기고 있다”며 “교육부는 현장 실태를 직시하고 즉각적인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