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을 굉장히 잘 이해하는 사람의 보상을 노린 땅 투기라고 생각합니다." 15년 차 감정평가사 A씨는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내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A씨는 "개발 지역 내 보상 업무를 하나부터 열까지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과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투기 의혹을 받는 시흥시 토지 일부에는 희귀수종인 왕버들이 심어져 있었다. 왕버들은 30년 경력 조경업체 대표도 "30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취급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생소한 수종이다.
조경업체의 한 관계자는 K씨의 사례를 두고 "보상하는 사람과 보상받는 사람이 짜고 쳐도 걸리기 어려운 희귀 속성수를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LH 측은 "투기를 막기 위해 빽빽하게 심어도 정상적인 식재를 기준으로 보상하며, 희귀수종이라고 해서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없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감평사 A씨는 LH의 반론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상에 돌입하면 토지 위에 있는 건물, 수목 등 지장물에 대한 조사를 먼저 진행한다. 수목의 경우 수종은 어떻게 되는지, 몇 그루가 심어져 있는지를 토지 소유주 입회하에 전문 조사자가 파악하는 절차다. 이를 토대로 복수의 감정평가사가 현장에 나가 지장물의 가격을 매긴다. K씨의 사례처럼 나무가 한 필지에 1000그루 이상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경우 감평사들도 평가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A씨는 "나무가 1000그루 이상 심어져 있는 경우 시간적 제약으로 일일이 숫자를 셀 수가 없다. 또 지장물 조사 때와 수량 등이 차이 날 경우 이를 수정해 재평가하는 절차가 복잡하다"며 "기본적으로 보상 절차에 대한 반발이 있어 관행상 소유자 의견대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희귀수종의 경우에도 감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A씨는 "희귀수종은 조경 전문 감정평가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비용, 절차 등의 문제로 고가의 소나무 등이 아니고선 대부분 일반 평가사에게 맡긴다"며 "또 시세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왕버들 같은 희귀수종은 평가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장물은 평가 후 철거되기 때문에 증거가 남지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지는 것이다. 수량이 과다 계산돼 문제가 되더라도 지장물 조사 업체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며 "K씨는 이런 현실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