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오스트리아와 2014년 크림반도
1938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권한 대행인 자이스잉크바르트는 수도 빈을 방문한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의 참관 아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병합에 관한 법률에 서명했다. 약 한 달 후에 형식적인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역사를 선도하는 열강 중 하나로 군림해 왔던 오스트리아는 그렇게 독일의 한 지역으로 편입돼 사라졌다. 이처럼 겉으로는 평화적인 행위처럼 보였지만, 이는 독일의 침략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입성하는 독일군. 교전이 없었더라도 군대가 월경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도발 행위다. 이렇게 쉽게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아돌프 히틀러는 기고만장해졌다.
실제로 바로 전날 독일군이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다. 비록 교전이 없는 단순 진주였지만, 이는 명백한 군사 행위였다. 더구나 1919년 체결된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양국의 합병은 20년간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이를 단죄해야 할 영국과 프랑스는 ‘양국 합병은 독일 민족의 내부적 행위이고 어차피 내년(1939년)이면 가능하기에 문제 삼기는 어렵다’며 에둘러 변명했다. 히틀러는 기고만장해졌다.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한 러시아군. 이들은 러시아군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인식표 등을 제거한 상태로 작전을 벌였다.
2014년 2월 27일, 친러 무장 세력으로 위장한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의 요충지를 기습 점령했다. 그리고 보름 후 실시된 주민 투표 결과를 근거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1954년 소련의 최고 권려자인 니키타 흐루쇼프가 원래 러시아 관할이던 크림반도를 우호의 상징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인이고 전략적 가치가 엄청난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은 당연히 컸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고 세바스토폴에 러시아 함대가 주둔하는 것을 조건으로 영토 문제는 일단락됐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세계 질서를 흔드는 커다란 도발 행위였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원래 자신의 영토를 회복한 것뿐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하고 단지 외교적 항의와 경제적 제재 정도만 단행했다.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기고만장해졌다.
1938년 주데텐란트와 2022년 동부 우크라이나
1938년 9월 30일, 현대 외교사의 치욕인 뮌헨 협정이 체결되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중 독일인의 비중이 큰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 정도면 히틀러가 욕구를 만족할 것으로 판단했다. 다음날 독일군은 독일계 주민들의 열렬한 환대 속에 국경을 넘었고, 영국의 총리인 네빌 챔벌레인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지켰다”고 자화자찬했다.

뮌헨 회담에 참석한 4개국 수뇌들. 전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약소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영원한 생존을 위해 옛 신성로마제국 강역에 더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동유럽과 서부 러시아까지 독일이 지배해야 한다는 레벤스라움(생활권)을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견을 『나의 투쟁』을 통해 공공연히 피력해 왔다. 결국 불과 6개월 만에 독일이 나머지 영토를 장악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5개월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를 독립국으로 승인한 푸틴의 조치에 러시아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현지인들.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 영내로 러시아군의 진입이 이루어졌다. AP=연합
2022년 2월 22일, 러시아군이 동부 우크라이나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의 지배에 반대하며 자치공화국을 세운 현지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이러한 도발에 미국과 서방이 꺼내 든 카드는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접경 지역의 방어력 증강과 경제 제재 조치였다. 그러면서 군사적인 행동은 나토가 공격받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밝혔다.
반면 푸틴은 2월 22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 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했다. 존재를 부정한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식민지라는 외교적으로 상당히 거친 언사까지 동원했다. 이를 통해 본다면 마치 히틀러에게 주데텐란트처럼, 푸틴에게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차지하기 위한 단순한 통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 수 있는 이유
나토의 확장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현지 러시아인의 보호가 목적이라면 반러 감정이 크고 러시아인이 적은 서부 우크라이나까지 군사적으로 대응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현재의 행태를 보면 레벤스라움을 주장했던 히틀러처럼 푸틴의 욕심이 우크라이나만으로 멈출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가 공공연히 옛 소련의 부활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폴란드 중서부 포즈난시 프리덤 스퀘어에서 시민들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고 있다. EPA=연합
만일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의도대로 정리되면 발트 3국과 몰도바가 러시아의 다음 공략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발트 3국은 반소, 반러 의식이 강해서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서 무려 1000년 전의 역사까지 거론한 것을 보면 영토에 관한 푸틴의 야심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
제정 러시아 당시에는 핀란드, 폴란드까지도 차지했었다. 물론 푸틴이 이곳까지 야심에 두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특히 발트 3국과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이다. 그런데 체코슬로바키아를 완전히 평정한 히틀러가 다음에 침략한 나라는 영국ㆍ프랑스와 군사 동맹을 맺은 폴란드였다. 그런데도 그들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막지 못했다. 동맹이 전쟁을 막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지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