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축구 FC서울에서 의기투합한 황인범(오른쪽)과 기성용. 둘은 축구대표팀 전현직 미드필더로, 황인범의 롤모델이 기성용이다. 김성룡 기자
“(황)인범이랑 같은 팀에서 뛴 건 2019년 아시안컵이 마지막이에요. 당시 제가 부상으로 중도 하차해 뉴캐슬로 돌아가 TV로 경기를 봤는데, 인범이가 저를 위한 세리머니를 해줘서 참 고마웠고 감동이었죠.”
20일 경기도 구리의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프로축구 FC서울 기성용(33)이 황인범(26)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성용은 2019년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돌아갔다. 바레인과 16강에서 황희찬이 손가락 10개, 황인범이 손가락 6개를 폈는데, 등번호 16번 기성용을 위한 골 세리머니였다.
![2019년 1월 아시안텁 바레인과 16강에서 황희찬(오른쪽)이 손가락 10개, 황인범이 손가락 6개를 폈다. 부상으로 중도하차한 기성용을 위한 세리머니다. 기성용 등번호가 16번이다. [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4/21/f23180b4-0d67-4990-abe8-fe040c7e3b54.jpg)
2019년 1월 아시안텁 바레인과 16강에서 황희찬(오른쪽)이 손가락 10개, 황인범이 손가락 6개를 폈다. 부상으로 중도하차한 기성용을 위한 세리머니다. 기성용 등번호가 16번이다. [뉴스1]
4년이 흘러 황인범과 기성용은 FC서울에서 의기투합했다. 러시아 루빈 카잔에서 활약하던 황인범이 지난 5일 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러시아 프로축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보호를 위해 특별 규정을 도입했다. 황인범은 임시 자유계약선수(FA)로 서울과 6월까지 단기 계약을 맺었다.
황인범은 “2018년 대표팀에 함께 뽑혔을 때 같은 방을 쓰고 싶다고 부탁할 만큼 성용이 형은 제 롤모델이다. 당시 ‘언제 이런 기회가 있겠나’라고 생각했다. 전 벤치 멤버였고, 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다시 한 번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성용이 형이 ‘한국에 오면 형이 있는 서울로 올 거라고 믿는다’고 반 협박을 했다”며 웃었다.
기성용은 “인범이 영입 얘기가 있다는 걸 늦게 들었다. 미리 알았다면 더 먼저 얘기 했을 거다. 서울에 도움이 되고, (올해 11월)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상당히 중요한 시기인 인범이에게도 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추천했다”고 말했다.

FC서울에서 의기투합한 황인범(왼쪽)과 기성용. 김성룡 기자
앞서 황인범은 2018년 10월 파나마와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뒤 “성용이 형의 대표팀 은퇴를 앞당길 수 있도록 빨리 성장하겠다”고 말했었다. 몇 차례 무릎 수술에도 A매치를 110경기나 뛴 기성용은 2019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황인범이 대표팀에서 ‘기성용 후계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황인범은 “그 때 욕을 많이 먹었고 ‘네가 뭔데’란 말도 들었다. 성용이 형을 대신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성용이 형, (구)자철이 형, (이)청용이 형이 유럽을 오가며 얼마나 치열하게 대표팀에 헌신하는지 지켜봤다. 형들을 위해 어린 친구들이 빨리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기성용은 “대표팀을 은퇴할 때 여러가지를 고려했지만, 제 자리에 충분한 역할을 해줄 선수들이 많았고 인범이가 그 중 한 명이었다. ‘이제 인범이한테 맡기고 대표팀 은퇴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대표팀 미드필더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해야 될 일이 많고 경기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제 예측대로 인범이는 아주 잘하고 있다. 인범이가 보란 듯 증명하며 아시아 최종예선을 편안하게 통과하도록 이끌었다. 경기 운영도 훨씬 노련해졌다. 인범이가 잘하면 제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2018년 9월 축구대표팀 훈련에서 기성용이 황인범을 제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4/21/97173073-b3c3-40cb-8f69-c3d42aca3051.jpg)
2018년 9월 축구대표팀 훈련에서 기성용이 황인범을 제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은 K리그1 8위(2승4무3패)를 기록 중이다. 발가락을 다쳐 재활 중인 황인범은 “목표는 K리그가 재개되는 5월로 삼고 있다. 재활 상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능한 빨리 뛸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어릴 적부터 성용이 형이 어떻게 풀어가고 수비하는지 찾아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형의 작은 습관까지 배워가고 싶고, 저도 서울의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서 황인범-기성용이 함께 뛰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 기성용은 “인범이가 서울에서는 좀 더 앞으로 전진 배치돼 찬스를 만들어줄 것 같고, 저는 뒤에서 받쳐주며 경기를 풀어가는 역할을 할 것 같다. 인범이는 득점 능력과 공간 침투 등 장점이 많다. 인범이를 좋아하는 팬들은 공격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황인범은 지난 2월 루빈 카잔의 터키 전지훈련 도중 발가락 골절상을 당해 재활에 들어갔는데,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황인범은 “러시아 내부 상황은 잘 몰랐는데 악화되면서 당황스러웠다. 제가 3개월 단기 계약한 것만 봐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빨리 (전쟁이)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성용은 “누가 인범이가 서울에 올 거라고 생각했겠나. 전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해서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 인범이는 한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나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여기(서울)에서 몸을 잘 만들어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FC서울에서 의기투합한 황인범(오른쪽)과 기성용. 김성룡 기자김성룡 기자
황인범은 첫 월드컵을 앞뒀다. 한국은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에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한 조에 속했다. 월드컵을 3차례 참가한 기성용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1-2 석패)을 뛰었다.
기성용은 “당시 우루과이는 프랑스를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왔지만, 막상 붙었을 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비록 졌지만 대등한 경기를 했다. 그 때는 첫 월드컵이라서 이 정도면 잘했다고 자기 만족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때 더 욕심 냈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인범이가 월드컵에 처음 나가면 긴장도 부담도 되겠지만, 현 대표팀은 분위기도 좋고 능력도 있다. 선수들이 부상만 안 당하고 자신감을 갖고 담대하게 한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나대표팀 안드레 아이유와 스완지시티에서 함께 뛰었던 기성용은 “저랑 같이 뛸 때 핵심적인 역할이었다. 가나가 경험은 축적됐겠지만 예전보다는 파괴력이 다소 떨어진 것 같다. 최근 경기력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주도하면서 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인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성용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성용은 만능 열쇠처럼 공수에서 활약해 ‘마스터 키’라 불렸다. ‘뉴 마스터 키’라는 별명에 대해 황인범은 “영광이다. 그 별명에 걸맞는 활약을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