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적자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 하도록 제한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한다. 국세 수입과 비교해 지출이 많이 늘어나지 못 하도록 막아 나라 살림의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같은 재정준칙을 추진한 바 있지만, 당시 마련한 방안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내용으로 올해 안에 법 개정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회재정부 장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13일 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확정했다. 재정적자의 한도를 관리재정수지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이른바 ‘-3% 룰’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하면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조인다. 올해 말 기준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49.7%다.
재정수지는 정부가 거둬들인 세입과 세출의 차이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게 관리재정수지다. 정부는 올해 관리재정수지가 GDP 대비 -5.1%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준칙이 법제화할 경우 이처럼 큰 폭으로 적자를 보면서도 나랏돈을 쓰는 식의 재정 운용이 어려워진다.
‘-3% 룰’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던 재정준칙보다 엄격하다. 문 정부에서는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로 나눈 수치와 국가채무비율을 60%로 나눈 수치를 곱한 뒤 그 값이 1.0 이하가 되도록 식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 이내,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로 각각 관리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계산 식이 복잡한 데다 통상 통합재정수지가 관리재정수지보다 적자 비율이 낮게 나타나 느슨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법안 통과가 불발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는 연내 재정준칙 법제화를 마친 후 내년에 편성하는 2024년도 예산안부터 즉시 적용할 방침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안을 내면서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적용하려고 한 것과 비교하면 강력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6%로 전망했다. 재정준칙 법안이 통과 전이지만 당장 내년도 예산안에도 이를 적용한 것이다.
文정부서 급증한 국가채무
재정준칙 마련에 속도를 내는 건 지난 정부에서 급격히 불어난 나랏빚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660조2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올해 말 1068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400조원 이상 증가하면서 앞선 두 정부(이명박·박근혜)에서 늘어난 것(351조원)보다 많은 수준이다. 지난 5년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36%에서 49.7%로, 5년 새 13.7%포인트 급등했다. 2020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5.8%에 달할 정도로 세입보다 지출이 크게 늘면서다.
다만 재정준칙의 적용 예외는 두기로 했다. 전쟁과 대규모 재난, 경기침체, 남북관계 변화 등 긴급한 위기상황이나 극히 이례적인 상황에선 준칙을 면제할 수 있는 근거를 둔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요건과 재정준칙 예외상황이 동일하다. 예외 상황이 끝나면 직후 편성하는 예산안부터는 준칙을 다시 적용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추경을 10번이나 한 전례가 있는 만큼 재정준칙도 예외를 자주 둘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재정준칙 방안보다 예외를 더욱 엄격하게 바꾼 것”이라며 “예외사유 소멸 뒤 즉각 재정준칙을 적용토록 한 것도 최대한 준칙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 도입방안 비교. [자료 기획재정부]
세계잉여금 중 국가채무 상환에 쓰는 비율은 현행 30%에서 50%로 높이기로 했다. 세입이 예상보다 늘어 지출을 상회할 경우 남는 돈으로 부채 상환을 더 많이 하겠다는 뜻이다. 재정준칙 한도는 5년마다 재검토한다.
전 세계에 재정준칙을 도입 중인 국가는 총 105개국에 달한다. 주로 선진국으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선 한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재정준칙을 활용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재정 씀씀이에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건전재정 기조를 확고히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재정 총량을 통제‧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과 법제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