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때 공동묘지서 발성연습…그 패기로 지금 사는 것 같다”

소리꾼 장사익이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공연용 하얀 한복을 입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수많은 곡절을 겪었다는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왔다”며 소년 같은 표정을 지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리꾼 장사익이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공연용 하얀 한복을 입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수많은 곡절을 겪었다는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왔다”며 소년 같은 표정을 지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리꾼 장사익(73)은 노래할 때마다 새하얀 한복 차림이다. 무대에서 차려입는 의상은 딱 두 벌이다. 15년 전 동대문시장에서 맞춘 광목 한 벌과 여름이 점점 더워지자 몇 년 전 새로 마련한 모시 한 벌뿐이다. 직접 빨고, 다리며, 풀을 먹여가며 곱게 세월을 먹은 옷은 표백한 듯 눈부신 백색이다. 낡아 해진 자리는 직접 꿰맸다. 살펴보니 감쪽같다.

장사익의 소리는 이 한복과도 같다. 시간을 더하면서 쌓이고 깊어진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런 그가 다음 달 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4년 만에 단독 공연 ‘사람이 사람을 만나’를 한다. 그동안 2년에 한 번씩, 숙제처럼 꼬박꼬박 공연해왔지만 2020년 10월에 날짜까지 잡았던 공연이 코로나19로 취소되면서 4년 만의 무대가 됐다.

장사익은 “굿쟁이가 굿으로 슬픈 사람은 씻어주고, 기쁜 사람은 더 기쁘게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것에 자부심을 갖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자는 의미로 노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은 지금까지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다.

새 공연에서는 네 곡의 신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우화의 강’(마종기), ‘뒷짐’(한상호), ‘뒷굽’(허형만), ‘11월처럼’(서정춘)이다. 한결같이 시인의 시에 가락을 붙인 곡이다. 새 노래를 앨범보다 공연에 먼저 올리는 건 무대에서 익숙해지고 노련해진 다음, 완벽할 때 비로소 녹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장사익은 1992년 태평소로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을 받고, 94년 1집 ‘하늘 가는 길’을 내며 대중 앞에 서기 시작했다. 그간 ‘소리꾼’ ‘노래하는 사람’으로 불리며 ‘국악 스타일’로 분류됐다. 하지만 사실은 국악기만 익혔지 소리는 전공하지도, 누굴 사사한 적도 없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대중음악 학원에서 3년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남진·나훈아의 노래를 배웠을 뿐이다. 스스로 “배운 것도 없는데 운이 있었다”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나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가슴을 후비는 그의 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간절함은 마흔다섯 데뷔 전까지 전자회사·가구점·독서실·카센터 등 15개 직장을 옮겨 다니며 넘어지고 깨졌던 삶의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게 아닐까.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왔으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찡찡거리고 있었으면 지금처럼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리는 어린 시절 뒷산에서 만들어졌다. 반장을 하던 어린 장사익은 학교에서 웅변을 잘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도 안 빠지고 뒷산을 30분 올라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발성 연습을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5년을 꼬박 했다. 그가 연습을 한 자리 아래는 공동묘지였다. 장사익은 “무서웠지만, 깡다구로 5년 동안 매일 했다”며 “귀신들 앞에서 새벽마다 소리 지른 건데, 그 기운으로 지금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터진 목청으로 지금껏 노래했고, “막 질러도 소리가 쭉쭉 나는”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2016년 시련이 닥쳤다. 성대결절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한 뒤로는 발성법을 바꾸는 훈련을 했다. 그는 “사람이 늙으면 키가 줄듯이 노래도 마찬가지”라며 “30년 전에 불렀던 것처럼 높은 소리는 내지 못하고 남들 듣기에 티 안 날 정도로 살짝 내려 부른다”고 밝혔다.

곧 데뷔 30주년인 그는 “힘 있을 때까지 노래하려고 한다. 힘이 없는데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 진짜 노래다. 힘 있게 높이 안 올라가도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목표를 묻자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라며 “더 유명해지면 지금처럼 인사동이며 종로 바닥을 내키는 대로 몇만 보씩 걸을 수 있을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