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떠나는 사람도 반드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보내는 이도 재회하기를 원하지만, 이런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는 헤어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으로 인한 강제적인 이별이다. 전쟁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소수의 권력자가 주도해서 시작하는 폭력적인 행위다. 필연적으로 인적, 물적 피해가 벌어지기에 전쟁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요소가 많지 않다.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범위가 대폭 늘어난 제2차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전쟁이 벌어지면 전방의 군인보다 민간의 피해가 많게 되었지만, 그래도 당장 교전 행위로 인해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위험에 좀 더 많이 노출된 이는 군인이다. 전선에서 마주친다면 상대방은 반드시 제거할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참전은 생을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행위다.
나의 목숨을 걸고 남의 목숨을 뺏기 위해 싸우는 군인들 또한 로봇이 아닌 사람이므로 당연히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있다. 그래서 국가의 명령에 따라 의무를 이행하려고 전쟁터로 가는 군인들도, 이들을 보내야만 하는 가족들도 어쩔 수 없이 아픈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원하지 않는 이별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희망은 헤어질 때의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다시 재회하는 것이다.
주검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최악의 경우를 군인 자신도, 보내는 이도 모두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간절함과 달리 비극적인 결말이 비일비재하다. 전쟁이 벌어지고 거기에 뛰어든 이상 누구에게는 아픔이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이런 무서운 현실은 계속 이어진다. 그 정도로 전쟁은 비참하고 나쁘다.
전선으로 가는 군인을 환송하는 여러 종류의 사진을 보면 종종 만면에 웃음을 띠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결코 즐거워서 웃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떠나는 이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작은 노력일 뿐이다. 가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 심정으로 보내는 사람에게 웃음을 보인다. 그러나 내면은 아쉬움과 걱정뿐이다. 이처럼 가장 원초적인 감정은 웃음으로도 감추기 어렵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 병사와 가족들에게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마저 표현할 수 없도록 억압이 가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북한 당국이 동요를 막기 위해 파병군인 가족들을 별도 장소로 집단 이주시켜 통제하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보고했다. 대북 방송으로 이런 내용을 알게 된 전방의 북한군이 동요한다는 것을 보면 현재 북한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라는 지옥이 수시로 등장한다. 지금 당장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눈에 보이지만 지구 상에서 전쟁, 분쟁이 한시도 멈춘 적은 없다. 그 수많은 싸움이 소수 권력자에 의해 시작되지만, 이로 인해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하는 이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그리고 앞으로도 분명히 이런 사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