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는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하고 54년째 대물림해온 아사드 독재정권이 붕괴됐다고 선언했다. 부친 하페즈 알 아사드(1930~2000)를 이어 24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시리아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시작된 지 13년 만이다. 외신들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온 이란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러시아가 각각 이스라엘과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원 여력이 부족해진 것을 반군의 승리 원인으로 꼽으며 “두 개의 먼 전쟁이 시리아의 운명을 바꿨다”(CNN)고 전했다.
“아사드 태운 비행기는 모처로 떠나”
아사드 정권의 모하메드 알잘리 총리는 “시리아 국민이 선택한 어떤 지도자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한 시리아군 장교는 로이터통신에 “군사령부가 장교들에게 아사드 정권이 끝났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HTS 지도자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텔레그램 성명에서 “다마스쿠스 시내 공공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전 총리의 감독 아래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다마스쿠스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구호와 “자유”를 외치며 환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부 시리아군은 일부 지역에서 ‘테러 단체’에 대한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혀 충돌의 불씨는 남아있다.
시리아는 지난 54년간 아사드 집안이 통치했다. 국방장관이던 하페즈 알 아사드가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는 2000년부터 시리아를 통치해왔다. 그러나 시리아군이 2011년 민중 봉기를 잔인하게 진압한 후 내전이 발발했다.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내전 발발 이후 민간인 16만 명, 정부군과 반군 등 전투원 34만 명 등 약 50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500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미국·러시아·이란·튀르키예의 각축장
미국은 그간 아사드 정권에 비판적이었고, 시리아 반군 중 쿠르드족 민병대인 시리아민주군을 지원했다. 반군의 주력인 HTS는 테러조직 명단에 올렸다. HTS가 설립 당시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점에서다. 다만 HTS 지도자 알졸라니는 6일 공개된 CNN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알카에다에 동조한 것은 과거의 일이라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시리아 내전은 그간 미국·러시아·이란·튀르키예 등의 각축장이었다. 러시아와 이란은 각각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지역 맹주로서의 기득권 수호를 목표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내전에 깊이 개입해왔다. 러시아는 2015년 아사드 정권의 요청으로 전투기와 폭격기를 동원해 반군 진지를 공습했고 이란은 헤즈볼라를 통해 반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반군은 지난달 하순 시리아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리아의 친정부 무장세력 배후에 있던 이란혁명수비대 지휘부가 숨지고 이란의 시리아에 대한 무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이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는 것도 시리아 반군에 호재였다.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한 튀르키예도 반군인 시리아국민군(SNF)을 도왔다. 튀르키예는 시리아와의 국경을 따라 완충 지대를 확장하며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쿠르드 무장세력을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이들의 활동을 막는 데 주력해 왔다.
“이란 책략 붕괴” “불확실성의 시기”
로이터통신은 “서방 국가들은 국제적으로 테러단체로 지정된 HTS가 내세울 행정부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해야 한다”며 “일부 시리아인들은 HTS가 과격한 이슬람식 통치를 강요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 등 미국 동맹국들은 이슬람 무장 단체를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에 강대국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아사드 대통령이 헤즈볼라 등과의 관계를 끊는 대신 서방이 개입해 분쟁 확대를 막는 방안을 UAE를 통해 미국에 제안했었다고 이날 보도했다. 또 반군이 정권을 잡을 경우 시리아 내 기독교 소수민족이 박해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국에 전달하려 기독교 지도자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에게 파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우리 싸움이 아니다”라며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사드의 외교적 시도가 불발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