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질세라 "100만불 내겠소"…트럼프 취임식 '끝없는 줄대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2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아메리카 페스트 2024’ 행사에서 연설중 손가락으로 청중석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2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아메리카 페스트 2024’ 행사에서 연설중 손가락으로 청중석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다음달 20일)에 굴지의 기업들이 내미는 거액의 기부금이 몰리고 있다. 이미 역대 최대 규모 모금액을 넘어 신기록 행진 중이다. 트럼프 2기를 앞두고 커지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 이어지는 ‘트럼프 줄대기’ 행렬이란 평가다. 기업계는 물론이고 정·관계까지 전 세계가 트럼프 취임식에 총력전을 펴는 사이 계엄·탄핵의 소용돌이 속 한국만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24일(현지시간) 워싱턴타임스 등에 따르면, 토요타 북미 법인은 트럼프 취임위원회에 100만 달러(약 14억5000만원)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전날 포드가 트럼프 취임식을 위해 100만 달러와 일부 차량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나온 소식이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이달 초 100만 달러와 차량 기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가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공언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되자 업체들이 앞다퉈 ‘트럼프 보험’에 드는 모습이다.

‘악연’ 기업들도 거액 기부 행렬 동참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 AFP=연합뉴스

줄대기를 시도하는 곳은 이들뿐만 아니다. 빅테크 정보기술(IT) 기업부터 금융·가상화폐 업계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불문한다. 트럼프와 악연 등 ‘과거’도 더는 문제 되지 않는다.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건 때 트럼프의 페이스북 계정을 정지시키는 등 오랫동안 앙숙 관계였던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트럼프 1기 때 각종 정부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악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는 이미 취임위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아마존의 경우, 2017년 1기 취임식 때 낸 기부금(5만8000달러)과 비교하면 약 17배로 늘어난 규모다. 트럼프 2기의 최대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법정 공방까지 벌였던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도 개인 명의로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기업도 각각 100만 달러의 기부금을 약정했다. 또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크라켄 역시 각각 100만 달러를 취임위에 냈다. 가상화폐 사업 관련 규제 개혁을 기대하며 트럼프 측과 우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선제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미국을 세계 최고의 가상화폐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가상화폐 대통령’을 자처한 바 있다.


취임위는 취임식 이틀 전(1월 18일)부터 사흘간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ㆍ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축제’를 비롯해 퍼레이드, 일요 예배(1월 19일), 리셉션, 만찬 등 트럼프 지지자들과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취임식 관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행사에는 기부금 규모에 따라 행사 참석 ‘등급’이 달라진다. 기부 등급 중 최고액인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면 내달 18일 예정된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 부부와의 만찬 행사 티켓이 주어진다. 취임식 이튿날 트럼프 당선인 부부가 참석하는 일요 예배에 동참하려면 1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의사당 앞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의사당 앞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로이터=연합뉴스

취임위 모금액 목표치 이미 돌파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은 일반적으로 무료지만, 취임식과 관련된 일부 행사는 취임위에 기부금을 내는 특정 인사들만 초청하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 취임위는 기부금을 통해 취임 행사 준비 자금을 합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지난 16일 모금액은 취임위의 목표치인 1억5000만 달러(약 219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이는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 거둬들인 6200만 달러(약 905억원)의 약 2.5배 규모다. 또 트럼프 1기 취임식 때 모금액인 1억700만 달러(약 1560억원)의 약 1.5배 수준이다. 취임 전까지 아직 한 달이 남은 만큼 최종 모금액이 2억 달러에 육박하거나 어쩌면 훌쩍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2의 백악관’ 된 트럼프 사저 

17일(현지시간)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팜비치=강태화 특파원

17일(현지시간)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팜비치=강태화 특파원

트럼프가 머무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자택은 사실상 ‘제2의 백악관’이 된 지 오래다. 개인적 교류를 중시하는 트럼프와 친분을 쌓기 위해 몰려든 전 세계 정·관계 인사들로 24시간 북적이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올해만 세 차례 마러라고를 찾았고,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을 이유로 든 트럼프의 ‘25% 관세’ 공격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달 29일 급히 마러라고를 방문했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도 마러라고행 대열에 합류했다. 대만은 트럼프 취임식에 한궈위(韓國瑜) 입법원장이 인솔하는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한 상태다.

팜비치 주변 호텔 등 숙박업소는 방을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한때 트럼프를 비판하거나 거리를 뒀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와 무조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앞다퉈 달려가고 있다”고 짚었다.

반면 한국 인사 중 취임식에 초대받은 이는 지난 16~21일 마러라고를 방문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을 비롯해 류진 풍산그룹 회장 겸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 등 일부 재계 인사와 국민의힘 김대식·조정훈 의원 등 극소수뿐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당시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방미 파견단 자격으로 참석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참석 인원이 제한됐었다.

내년 1월 트럼프 취임식을 앞두고 일부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미 공화당과 조율해 의원단을 꾸려 취임식에 참석하는 방안을 타진했지만 계엄·탄핵 정국 속에 협의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정부 한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 시급한 때인데 우리만 사실상 발이 묶인 상태”라며 “세계 각국이 총력전을 펴는 ‘트럼프 외교전’에 한국이 가장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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