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B(59)씨는 29~30일 집 수리를 하려다 무안공항 사고를 접하고 난 뒤 작업을 중단했다. 그는 "온종일 멍한 상태로 보냈고, 그 후에도 그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의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 우울 증세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어떤 이는 "뉴스 접하고 나서 화장실에서 울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직장인은 "무력하고 우울하고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다. 유튜브 보고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데 들어갈 때마다 알고리즘에 따라 뉴스가 계속 뜬다.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어떤 이는 과거의 대형 참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힘들다. 사고로 가족 두 명을 잃은 적이 있는데 (중략) 이태원 사고 관련 뉴스를 볼 때처럼 이번에도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계엄 사태·제주항공 참사에 사회적 트라우마"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무안공항 참사라는 두 건의 좋지 않은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한 게 문제"라며 "누구나 '마음의 댐'이 있지만 연속적으로 큰 파도가 오면 댐이 넘치고, 사회적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백 교수는 며칠 사이에 "허탈하고, 마음을 다잡기 힘들다"는 호소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석정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전국이 재난 지역이나 다름 없을 정도"라며 "특히 사람이 만든 기술에 문제가 생겨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트라우마, 정상적 반응이지만…"한 달 넘으면 상담 필요"
석 교수는 '비행기 공포증'에 대해 "재난 직후에는 공포심이 생기는 게 당연한 것이며 정상적인 감정"이라며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회복하는데, 한 달 넘게 가면 전문가를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지인과 대화를 할 것을 권고한다.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금은 위험한 상황이다.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의 말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며 "심하게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정쟁이 스트레스를 많이 주기 때문에 당분간이라도 멈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현재 우울 증세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렇다고 새해를 맞아서 슬픔의 터널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가까운 사람과 같이하면서 아픈 마음을 충분히 나누고 위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성명서에서 "일상을 내팽개친 채 뉴스에 몰입하여 두려움을 증폭하는 것보다 각자의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신질환도 악화 우려…과호흡 등 증세 살펴야
트라우마가 너무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우려도 있다. 자살자를 분석(심리부검)하면 평균 3.9개의 매우 어려운 사건이 있다고 한다. 비상계엄·무안공항 참사에다 개인의 어려움을 더하면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석 교수는 "멍한 상태에 빠져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할 정도(과호흡)가 돼 실신하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살필 필요가 있다"며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전문가에게 연결하거나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리지원단으로 연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활용하면 좋다.
전문가들은 사고 영상 시청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석 교수는 "영상이나 뉴스를 계속 보면 안 좋다. 정보가 필요할 경우 아침·저녁에 한 번 보는 식으로 제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유튜브나 뉴스 영상, SNS보다 자극이 약한 미디어(가령 신문)를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