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삼지무려(三紙無驢. 석 삼, 종이 지, 없을 무, 나귀 려)다. 앞의 두 글자 ‘삼지(三紙)’는 ‘종이 세 장’이다. ‘무려(無驢)’는 ‘나귀가 없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종이 석 장에 글을 썼는데 정작 주인공인 나귀는 없다’라는 뜻이 된다.
안지추(顔之推. 531~597)가 ‘안씨가훈(顔氏家訓)’의 ‘면학(勉學)’편에 소개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고루한 유생이 어느 날 장터에 가서 나귀 한 마리를 샀다. 비교적 중요한 거래였기에 계약서도 스스로 작성했다. 달필인 그가 우쭐한 표정으로 붓을 들어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종이 세 장에 글씨를 가득 채웠지만, 계약서의 핵심인 ‘나귀’라는 단어가 없었다. 나귀를 판 농부가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이 계약서에 왜 ‘나귀’라는 글자가 없소?” 그가 답한다. “조금만 기다려주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적으려는 참이네.” 머리에 지식은 가득하지만 실생활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유형의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묵직한 교훈이 담긴 풍자다.
안지추는 왕조 교체가 잦던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남쪽 양(梁. 502~557) 나라에서 태어났다. 서예에도 뛰어났던 부친을 9세에 여의고 두 형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벼슬길에 나섰으나 내란과 외침으로 포로 생활을 했다. 양나라가 멸망하고 북제(北齊. 550~577)에서 재기해 고위 관료 생활을 했다. 하지만 북제가 북주(北周. 557~581)에 의해 멸망하자 다시 포로가 됐다. 훗날 중국을 통일한 수(隋)나라 양견이 태자 교육을 위해 그를 기용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그즈음 병을 얻어 향년 66세에 세상을 하직했다.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이 그의 5대손이다.
안지추는 평생 난세를 겪으며 깨우친 바를 ‘안씨가훈’에 기록해 후손들에게 전했다. 흔히 가훈이라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처럼 짧은 글을 떠올린다. ‘안씨가훈’은 총 20편으로 구성된 딱딱하지 않은 저서다. 따분한 느낌을 주는 글귀는 최소화하고, 직접 경험했거나 전해 들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많이 소개했다.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교훈을 깨치거나 성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안씨가훈’에 심히 어리석고 얼굴까지 두꺼운 인물이 주인공인 일화도 나온다. 북제에 시작(詩作)을 즐기는 한 사대부가 있었다. 대부분이 시(詩)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글들이었지만, 그는 대단한 시인으로 자부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최고 시인들의 시를 형편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지인들이 속마음을 감추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면 사실로 믿었다.
하루는 그가 용기를 낸다. 소를 잡고 큰 잔치를 열어 자신의 작품들과 필명을 널리 알리려고 했다. 지켜보던 아내가 울면서 그를 말렸다. 그러자 땅이 꺼지도록 탄식하며 그가 말한다. “나의 뛰어난 재능을 아내조차도 못 알아보는데, 하물며 세상 사람들은 오죽할까!” 안지추는 후손들이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 정도는 갖추길 바라며 이 일화를 기록해 전했다.
최근 들어, 고급 학문이 탁상공론에 빠지는 사례를 오히려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아이러니다. 동서고금에 나귀와 관련된 우화가 많다. 이솝 우화에서 당나귀는 매우 어리석거나 고집이 센 동물로, 부정적 이미지로 자주 묘사된다. 근면한 이미지가 강해 미국 정치권에서 당의 상징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중국어권에선 누군가에게 ‘나귀’라고 하면 바로 욕설이 된다.
안지추가 ‘안씨가훈’에 소개한 앞 에피소드 주인공을 다시 떠올려보자. 자신이 구매한 나귀보다도 더 어리석게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학문을 익히되, ‘왜 학문을 하는가’도 자주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우치기 위해 그가 굳이 이 ‘삼지무려’ 일화를 후손들에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